@Raymond_M
(거멓고 메마른 사람이 있다.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 아바다 케다브라. (목소리만 울린다. 겨눈 손은 지팡이를 쥐고 있지 않다. 형편없는 농담 뒤 이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다.)
@yahweh_1971
(죽음은 창가 사이에 비죽이 선 그림자의 형태로 온다. 등이 뻣뻣하게 굳는다. 피할곳은, 있나? 그는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숨죽인다. 깨달음은 목소리가 떨어지고 난 후에야 온다. 그러나 그는 지팡이를 내리지 않는다.)...네가 왜 여기 있어?
@Raymond_M
(지팡이를 바라본다. 여전히 무장하지도, 방어하지도 않곤 아이에게 손을 내민다. 겁을 먹곤 움츠러드는 모습에 나지막히 다시 웃었다. 그러나 이번엔 웃음소리만 울린다. 사람이 셋 선 복도, 이곳엔 겁먹은 이가 몇이나 있는가?) ...... ....... 이봐. 의심하는 거야? (걸음을 한 발짝 뗀다. 미미하게 몸을 숙였다.) 그러지 마. 비켜. 마침 나가야 했으니- 이 애는 내가 보호소로 데려가지.
@yahweh_1971
이런 시대니까.(그러나 그는 순순히 지팡이를 내린다. 폴리주스로 당신의 겉모습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몇 년 사이에 바뀐 사소한 행동거지까지 모방할 수는 없다. 그가 순순히 비켜선다. 그리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속삭인다.)저사람은 아저씨 친구야, 엄청 강한 마법사니까... 이제 널 지켜줄거야.(그러고 나서야 아이는 주춤주춤 당신의 곁에 가 선다.)경계선이 뚫렸어. 나가기 전까지는 엄호할테니까...(한숨,)난 네가 녹턴앨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틀렸지만.
@Raymond_M
(손길에 묻은 위악은 잠시 움츠러들고, 그는 아이의 눈에서 잦아드는 경계심을 확인한다. 비소에 가까웠던 웃음은 사그라진다. 그러나 그대로 작은 손을 잡았다.) 그래도 오랜만의 학교잖아, 레이. (창밖에선 문득 비명이 터진다. 돌아보진 않았다. 느슨하게 묻어나는 리버풀의 억양과 오랜 애칭은 분명 폴리주스로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어색해하는 것을 이끌곤 먼저 걸음을 뗀다.) ...... 참전할 텐가? 네겐 지팡이보단 사진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yahweh_1971
...그래, 그리워했지. 지독하게.(내쫓길번한 곳이면서도 몇 번이고 이곳으로 돌아오길 소원했다. 아직도 이따금 꿈을 꾼다. 안온했던 유년기의 기억이다. 그가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준다.)그렇지만 내 그리움따위로 허비하다 내주기에는 너무 어린아이잖니...(그런것 때문에, 그는 제 유년기의 안온했던 요람 위로 시체를 쌓을 준비를 한다. 비명에 움찔거리지 않을정도로는 자라났지만, 그럼에도 지팡이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마는 것은 당신과 아이가 이곳에 있는 탓. 당신의 질문에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지만.)내 친구, 난 이미 너무 오래 전부터 전쟁터를 오갔는걸. 그러니 묻는다면... 기꺼이.
@Raymond_M
전장은 우리 삶이었지. (문장 끝 아이를 일별한다. 지독하게 어리다. 어리고 유약한 것, 무른 것, 소외되어 고통받는 것. 그것은 언젠가 우리였으며, 무력한 세월을 지나 이네들에게 되물림되었다. 개인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다. 그러나 손을 더욱 쥐었다.) ...... 허비를 걱정하다니...... 의외야. 내가 정말 죽음을 먹는 자였다면, 적어도 주문을 외기 전 쐈어야지. 저주에는 저주로, 악의에는 악의로. (목소리는 단조롭다.) 그러지 않았던 거야말로 허비야. 넌 사체더미의 일부가 되기엔 아깝거든.
@yahweh_1971
그렇지만 거기에 있었던 건 너였잖아.(그는 항변한다. 이 항변이 의미없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악의를 악의로 이기는 방법을 모른다. 어둠의 마법을 어둠의 마법으로 이겨내는 방법을 모른다. 그의 근본은 그런 곳에 있지 않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12:21 다만 서늘한 선의와 지독한 애정이 그를 나아가게 할 뿐이지.)네가 날 아낀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만일 그 구덩이서 썩어간대도 그건 내 선택이야. ...적어도 넌 날 기억하겠지.
@Raymond_M
(그러나 그것은 아주 운이 좋은 상황이었을 뿐이다. 그는 스스로를 죽음을 먹는 자로 치환하곤 쉬이 다음 벌어졌을 일을 그려볼 수 있다. 당신은 초록색 섬광에 심장을 맞곤 쓰러진다. 끔찍한 다정으로 이루어진 북소리는 멎고, 주문은 연이어 쏘아진다. 아이는 그에 두려워할 틈도 없이 이어 쓰러진다. 이곳에 남는 것은 두 구의 사체뿐이다. 썩어 파리가 꼬일 즈음 발견되었으리라. 그것은 그대로 산의 일부가 된다. 아이가 손을 꿈질거린다. 힘이 너무 들어갔음을 깨닫곤 느슨히 풀었다.) 네가 썩어빠져 거름이 된다면, 잘 생각해봐야 할 거야. 사자死者는 오로지 남겨지는 기억에 의해 정의되니까. 나라면 날 네 존재의 증명으로 고르진 않겠어. (미소가 희미하게 스쳤다.) 그러니 적어도 여긴 안돼. 선택지가 이 애랑 나뿐이니까.
@yahweh_1971
(그가 생각하는 산은 다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집착적으로 기록한 그 수많은 원고더미를 생각한다. 현상하거나 현상하지 못한 사진들. 철 되어 한데 보관되어있는 그 무수한 기록물과 종잇장들의 향연을. 숨이 끊어지는 순간 자신이 무화無化 되는 대신 돌아갈 자신의 근간을. 이 다음 타자에게로 자신의 바톤이 넘어가는 순간을. 그가 희미하게 웃는다. 따뜻한 손이 당신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차가운 손등을 쓸어내리고 아이의 손가락을 장난스럽게 건드린다.)그게 내 사후에 내가 기억되는 방식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럼 그 순간의 나는 방금 죽은 셈 치자고. 네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 바다를 건널테니... 이번 세기 내 죽음은 너만이 기억하는 걸로 해.
@yahweh_1971
(당신으로 살아서 제 증인이 되게 할 생각은 없다. 그는 아무것도 증거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구에도 성스러워지지 않을것이다. 그러므로 내일로 넘어가는 그 바톤의 오늘은 적어도 그의 몫이다. 그의 입술이 달싹인다. 살아서, 내일로 가야지.)그러니 가자. 종종걸음의 죽음이 우리의 뒷덜미를 잡아채지 못하게.
@Raymond_M
(당신의 기록과 그의 기록은 달랐다. 사진과 기록으로서 어둠을 밝히고, 앞날을 도모하고, 자신을 새기는 당신과 활자를 오롯이 칼날로 휘둘렀던 그는 같을 수 없다.) ...... (아니, 그들은 모든 면에서 영영 달랐다. 아득하게 먼 이십여년 전, 친애에 깃대어 나누었던 대화들에서부터 이미 정해진 갈림이었다. 지상을 보살필 사사로움과 활공 중 무엇이 옳았는가? 그것을 분간하기에 그는 천공을 날아본 적 없지만, 당신은 여전히 온전하며 경외롭다.)
이렇게 무마하려 하는군. 대체- 누가 널 오냐오냐해주며 기른 건지...... (그러나 손길을 거부하진 않았다. 걸음은 어느덧 건물의 층계를 넘는다. 보호소가 가까워졌다. "저...... 지금부터는 저 혼자 가도 돼요." 중얼거리는 아이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손은 놓지 않는다.)
@Raymond_M
새 시대야, 레이. 20세기를 의미하는 건지- 뒤집힐 세계를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넌 살아야겠지...... (아이는 문에 다다라서야 떠난다. 돌아봤다.) 살아야 해. 알았어?
@yahweh_1971
(당신은 인간의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는 쪽으로 걷고싶어했고, 그는 거기에 수몰된대도 그걸 끌어안는쪽을 택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의 창백한 밤을 안다. 죽은 이들의 이름을 잊지 못하는 마른 옆얼굴과, 약에 의지하지 않고는 사람이 살아가지 못하게 만들곤 하던 무수한 순간들을... 그는 감히 안다. 그러니 그저 오연히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많이 달랐지만 어쩌면 아주 닮았는지도 모른다고.... 그가 개구쟁이처럼 웃는다.)오, 물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지. 그중에서도 근 몇년간은 뿌리를 두고 있는 내 *보호자*가 하나 있는데, 소개받겠어? 때마침 너와 동명이인이거든.(그가 한쪽 눈썹을 밀어 올린다. 아주아주 능청스럽게.)헤니.(그는 당신이 아이를 놓아주는 장면을, 아이가 경계를 넘어 보호소의 '어른'의 품에 안기는 장면을 오래 바라본다. 무언가... 경도될만한 거리가 거기 있기라도 한 양. 그리고 손을 흔든다.
@yahweh_1971
아이는 떠나갔다. 이 자리에는 세기가 낳은 신성 둘이 남는다. 시선은 단호하게 떨어진다. 야훼와 프로메테우스.)물론이지. ...언젠가 는 그런 날이 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은 아니야.(누군가 말하길, 금속질의 섬칫한 초록 눈동자는 당신을 쏘아보는듯한 질감으로 응시하고 있다. 그의 따뜻한 손이 당신의 양 어깨를 쥔다. 그러니 맹세는 되돌아온다.)그러니 너 역시 그렇게 해. 난 해가 뜨는 장면을 봐야겠고, 그곳에서 널 기다리기로 약속했어. 날, 네 삶의 유류품으로 만들지 마. 알겠어?
@Raymond_M
(어깨에서 손이 떨어진다. 그러나 미지근하던 온기가 사라지고, 형체 없는 추위가 몰려오는 순간에도 그는 멍하니 당신을 보고 있다. 일그러지는 얼굴을 지켜본다. *내가 당신을 상처입혔나?* ─물음은 그러나 무용하다. 오랜 기간 그는 날이 없는 칼이었으매 적이 아닌 자들마저 그었다. 그는 친애들의 슬픔을 해갈해주지 않고서야 견딜 수 없는 인간이지만, 당장 당신의 슬픔에 대하여선 더 이상 손쓸 방도가 없다. 그것이 단지 세계가 아닌 그 자신에게서 기인한 슬픔인 까닭이다. 그는 증오하는 자들만을 직시하는 까닭에,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늘 해로웠다...... '차라리 내가 사라져 해결될 슬픔이라면 나았을 텐데.' 그것은 쉽다. 그러나 당신의 비애는 정확히 반대의 사유에서 기인하며, 그는 당신을 위로할 방도를 모른다.)
@Raymond_M
미안해...... ...... (목소리는 갈라져 나온다. 물러서는 모양을 지켜보다 손을 뻗었다. 되려 느슨히 어깨를 감아쥐곤 당겨온다. 늘 다정과 애정으로 젖은 눈을 명징히 올려다보았다. 당신의 숨을 이루는 그것은 그가 영영 사랑할 가치다.)
네게 괜찮을 걸 강요한 건 아니었어. (우습게도 떠올리는 것은 그의 형제다. "괜찮아." 당신과 같은 색채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리고, 메브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괜찮아, 헤니. 그러나 그는 늘 괜찮지 않았다. 상념을 치우려 작게 이를 갈았다.) 네가 괴로울 걸 알아. 나와는 다른 방식이되- 그래- 어쩌면 일부분은 닮았을지도 모르지. 네 영원을 이해해. 나도 노력해봤는데, 그게 잘 안돼...... 그러니 힘들겠지. 네겐 이 싸움이 수 사람의 무게를 띨 테니까.
@Raymond_M
(고개를 툭 기울인다. 어깨에 닿았을 것이다. 접촉으로서의 위로는 낯설지만, 당신에게 그것이 필요하다면. 결국 늘 이런 식이다. 빌어먹게도 마지막까지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지 못했다. 눈을 짙게 감곤 뜬다.) 레이. 그래도 살아. 미안해, 난 여전히 이런 것밖에 못 원해. 설령 다른 물길이 밀려오더라도 다른 애들을 모조리 그러쥐고 방주에 타. 부탁이야. 그러면, 난....... (사이. 부탁엔 대가가 따라와야 한다. 건조하되 힘겹게 덧붙였다.) 널 언젠가 되돌아볼 미련으로 남길 거야. 네 탓에 망설이게 되겠지. ...... 그게 네게 의미를 가지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