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nghal (늦은 밤인지라 잘 보이지 않지만… 곧 음 먹는 ㅈ 가 될 것 같다는 건 알겠다. 그리고 ‘처음 보는’ 거구의 사람도 그들 편이라는 것을.) 전선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Ludwik (긴 세월을 거치며 변해버린 친구는 바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의 고향이 모든 물이 흘러 고이는 바다의 밑바닥에 침몰하기 전과 후의 핀갈 모레이를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가져본 적 없는 조국일지언정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 또한 그러하므로... ... 하여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여전히 긁히는 듯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짤막하게 묻는다.) 혹시 접수를 도와줄 수 있습니까. 절차가 영 번거로워서. (거짓말이다. 그것보다는 그의 신분 증명이 여전히 여의치 않은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Finnghal (그렇더라도 과거와 단절될 수는 없다.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루드비크에게는.) 알겠습니다. 제가 하지요.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이 시각에도 분주해 보이는 병원 접수처에서 서류를 작성했다. 보호자 이름을 쓰는 칸에 무엇을 기입해야 할지 망설이다 일단 자기 이름을, 처음 만났던 먼 옛날 핀갈이 잘못 읽었던 그것을 쓴다. ‘Ludwik Kalinowski’. 그런 다음 거구의 사람을 돌아보았다.) 당신 이름도 보호자 자리에 쓸까요? …아니다, 조만간 전선으로 돌아가셔야 할 분이니 쓰지 않는 편이 좋겠군요… 상황이 퍽 급박하다는 건 저도 전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Ludwik (당신에게서 두 번째로 같은 데자뷰를 느낀다. 이 목소리는 어쩐지 익숙한데. 하지만 말씨가 너무 다르다. 영혼이 조각난 채 다이애건 앨리의 뒷골목을 헤매던 창백한 범죄자에게서 친우의 모습을 찾지 못했듯이 이 퇴락한 관료의 모습에도 그는 좀처럼 기억을 맞춰보지 못한다. 그저 당신이 서류를 쓰는 동안 뒤쪽에 물러나 서서, 이 마법부 직원은 지나칠 정도로 공손하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가.) ... 제 이름을 압니까? (마지막 말에야 그제사 위화감을 느끼고 되물었다.)
@Finnghal 아니요, 이름을 가르쳐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반면, 루드비크는 거구의 사람에게서 데자뷰를 느끼지 못한다 ─ 적어도 지금은. 그건 핀갈 모레이, 아니 어쩌면 루고사 로즈는 바다로 돌아가 터전을 꾸렸지만,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는 바다와 면해 있던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까닭일지도 모른다.) 이런, 제 소개부터 했어야 했는데…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입니다.
@Ludwik ――― (당신을 멍하니 쳐다보며, 한동안 말을 잃어버렸다.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가 마왕 치하의 마법부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으며, '사악한 세력들의 세뇌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로 돌아온 순수한 혈통의 사례'로 종종 거론됨은 알고 있었다. 레아 윈필드 옆에서 자주 사진 찍히는 괴상한 콧수염 남자가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무의식이 이 자명한 정보 두 가지를 연결하기를 여태까지 굳건히 거부해왔던 까닭은, 그러니까 ― 지금 이 순종적이고 예의바른 중년 관료의 모습이 그가 아는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와 도저히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그는 묻고 싶었다. ‘무엇이 널 꺾었어?’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지?’ 하지만 지금 이곳은 알맞은 시점도 장소도 아니었고 그는 알맞은 상대가 아니었다. 악에 복무함에 대해서, 함묵하고 순종함에 대해서, 그가 누구를 추궁할 수 있고 누구를 힐문할 수 있단 말인가?)
@Ludwik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다, 파시스트 제국주의자 돼지. 잠깐 나가서 나랑 얘기 좀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험악한 얼굴로 당신의 어깨를 잡고 만다.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고개 숙이고 복종하고 악을 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영혼을 어떻게 비틀고 변질시키는지 뼈저리게 알았다. 그 상태에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적어도 이유를 확인하지 않고서, 그 이유에 대해 *뭐라도* 힘껏 해보고 한 번쯤 박살나보지 않고서는 돌아설 수 없었다.)
@Finnghal 아, 당신 이름이 파시스트 제국주… (천천히 깨닫는다. 웃는 얼굴이 굳었다가, 씁쓸함을 띄더니, 돌연 체념으로 변한다.) …핀갈 모레이? 하하, 모레이 씨군요?… … (이제 그는 다시 웃을 수 있다. 순종적으로, 예의바르게. 접수 서류를 도로 작성하는 손길이 약간 떨리는 것만 제외한다면.) 정말 오랜만입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병원에서였는데 재회한 곳도 병원이군요. 재밌지 않습니까? 뭐 아무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접수가 끝나면 합시다.
(그는 입원 절차를 전부 끝내고 나서야 핀갈을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 관료적이다. ‘당신이 이렇게 존재할 수 있다니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많이 어긋난 존재로 보이지도 않고, 차림새가 멀끔한 걸 보아 고향은 복구된 것 같고. 좋은 일이지. 좋은 일이야…’ 상념은 흐린 미소 아래 묻어둔다.)
@Ludwik 나한테 존댓말 하지 마. 죽여버린다.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접수를 마치고 환자를 인계할 때까지 얌전히 뒤에 서서 기다려줬다.)
(그리고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당신 팔을 낚아채선 순간이동한다. 그는 대륙간 순간이동 같은 건 못 하므로, 어디까지나 평범한 바닷가로. 그리고 팔을 놓긴커녕 다른 쪽 팔까지 붙잡으며, 두 겹의 안경 너머로 당신의 눈을 강렬하게 들여다본다.)
너 그 공산당이란 데서도 제명당했냐?
(기다리는 동안 그가 생각할 수 있었던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를 지금 이 남자로 만들 수 있을 만한 일들*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른 간단한 설명이다. 그는 탈공산화에 관해 알긴커녕,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부터를 그다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
@Finnghal (무어라 대꾸하려 했으나 금방 순간이동당했다. 영국 어딘가의 바다임을 깨닫고 “아, 풍경 좋네요” 따위 형편 좋은 소릴 늘어놓다가… 그대로 붙잡혔다. …사실 계속 농조로 말하고 싶었다. “제 목 건강을 위해서라도 좀 앉아 주세요”라거나 “여기보다 더 아름다운 바다를 아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같은… 하지만 이어진 핀갈의 말에 그대로 표정이 굳는다.) …
… …그런 천박한 머글 문화는 어디서 알아내셨습니까? 아, 과거의 제가 말했었군요. 죄송합니다. 왜 그걸 묻는진 모르겠습니다만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저는 공산당에서 제명당하긴커녕 당원이었던 적도 없습니다. 왜냐고요? 전 머글 사회에선 있을 곳이 없는 ‘순수 혈통 마법사’거든요. 머글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란 말입니다. 두 번째, 머글 문화는 딱히 알아둘 가치가 없습니다. 과거의 저로부터 들었던 것들을 굳이 기억하지 마십시오.
@Finnghal 추가로, 이건 여담인데… (그제야 희미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존댓말 쓰면 죽여버린다고 하셨죠? 자, 어때요. 절 죽이실 겁니까? 고작 예의바르게 행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저처럼 선량하고 준법적인 소시민을요? 뭐 나쁠 건 없지요… … 당신의 말에 의하자면 생명은 죽고 죽이며 자기 자리를 차지할 뿐이지 거기에 선악은 없다고 했으니까요…
@Ludwik 아니, 야... ... ... (한때 '핀갈 모레이'를 찾는 사람에게는 문답무용으로 저주부터 날리고 봤던 '인면어'는 거울치료를 당하는 듯한 수치심을 느낀다. 당신에게서 손을 떼고 한 손으로 안경을 벗어던지며.)
아, 그러니까 머글 사회에서 널 거부했어? 남자에게 연정을 느낀다는 그것 때문에? 어느 세계에서도 발 붙일 수 없어져서, 그래서 과거에 있었던 건 잊기로 하고 다 포기한 거냐? (이것이 두번째로 떠오른 설명이다.)
@Finnghal (웃던 얼굴 그대로 굳는다. 어쩔 도리 없는 침묵이 이어진다. 비록 좋은 남편은 될 수 없었더라도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고 있으니 이런 말에 상처입을 이유도 없는데. 분명 그런데… 머글을 미워하는 척하지만 온전히 증오하지도 못하기 때문일까?… 한 번 영혼에 흔적을 남긴 것들은 영원처럼 남기에? ‘그래서 너는 네 몸에 찍힌 낙인이 명령하는 대로 전선에 나왔어?…’)
예. 전부 포기했어요. (…) “남자에게 연정을 느껴서”요?… 그건 진작에 단념한 지 오래입니다. 왜냐면 폴란드가 무너지고 소련마저 무너지고도 그곳의 사람들 중 누군가는 같은 성별…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쳐 말한다.) …같은 몸을 지닌 사람에게 연정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발 붙일 수 없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거든요. 아니, 전 이제 그냥 있을 곳이라곤 마법사 사회밖에 없거든요!…
@Finnghal 예! 몇 번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회가 날 거부했습니다! 머글들은 내가 사랑했던 이상을 내던지며 불태웠고 나라를 무너뜨리고 바다에 쓰레기나 버리고 있죠!… 당신이라면 절 이해할 수… (그는 다시 말을 고친다.)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요. 당신 또한 있을 곳이 하나뿐이라면 그곳에라도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알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머글을 싫어하잖아요. (그럴 거라고 믿었다. 자신이 핀갈이라면 도무지 증오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그들이 세운 사회가 밉지 않으세요?… 그럼 당연히 마법사가 훨씬 우월하다고 믿게 되지 않겠어요?… …
@Ludwik 미워. (고민할 것도 없이, 거의 반사적인 즉답이다.) 할 수 있다면 그들을 마법 세계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전부 없애버리고 싶다. 우월하고 말고를 따질 것도 없어. (그가 언젠가 에디스 애스턴에게 지적한 바, 그것은 대등한 경쟁자에게 품는 감정이므로. 그에게 *종*으로서 머글은 여전히 세계의 악성 종양이었다.)
하지만 네가 그 세계에도 전사들이 있다며. 이 마법 세계에 기사들이 있는 것처럼... ... 그들이 인간을 지금과 다른, 지금보다 나은 존재로 만들려고 제국주의(그의 혀끝에서 이 말은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둠의 마법'의 동의어처럼 들린다.)와 싸우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네 외숙부가 그렇듯이, 너도 그들 중 하나가 될 거라고... ... 설마 그들이 고작 누구와 연사를 만드느냐 따위로 너를 거부한 거냐? (첫번째와 두번째를 이어서... 한 여섯 번째로 수립된 보다 복잡한 가설이다.)
@Ludwik
나는 솔직히 그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고, 머글들 따위는 서로 싸우다 공멸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지만, (그는 다소 지나치게 열성적인 폴란드 소년의 말을 항상 반신반의했다.) 그리고 내 주제에 네가 뭘 하든 책망할 생각도 없지만, 적어도 네가 왜 이렇게 고개 숙인 채 마음을 죽이고 있는지 내게 이해해볼 기회를 줬으면 해. ... 너도 나를 찾아왔잖아. (마지막 말은, 조금 지나서 다소 망설이면서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