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es_diluti (어깨가 움찔한다. 익숙한 목소리다. 당신은 로간에게 자기 동화책을 질리도록 읽어주었으니까. 구겨지려는 미간을 펴고, 당신을 돌아본다.) 쥘, 세상에나.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길을 찾고 있냐는 말엔 일부러, 대답하지 않는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jules_diluti 산책 좋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땐, 나도 자주 걷곤 한단다. (눈이 가늘어진다.) 쥘, 괜찮니? 안색이 좋지 않구나... (당신의 머리에 손을 턱 얹는다.) 열은 없는데. (임판데는 나이가 들고 나서 -특히 로간이 태어난 후- 쥘을 애취급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물론 지금은 다른 의도가 다분하다.) 일단 좀 앉아서 이야기할까? 지금 떠났다간, 정말 쓰러질 것 같아서 그래.
@jules_diluti 어차피 판결만 남았는걸. 이제 투자할 것은 시간밖에 없고, 다행히도 내게 제일 많은 것이 그거라. (쓰게 웃는다.) 아무리 너가 로간이랑 키가 비슷해도, 이 정도는 구분해. (사실 이혼 소송을 겪어 어색해진 지금도, 로간보다 쥘과 더 친했다. 로간이 아팠을 땐, 집요정들에게 간호를 부탁하고, 저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 몸에서 뚝 떼어냈으면서 타인이고. 가족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먼데, 남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가까웠다. 당신의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하늘을 멍하니 본다. 어머니라... 손으로 당신의 등을 두드려주며 한참 침묵하다가.) 어머니를 만나면 뭐하고 싶은데? (불쑥 묻는다. 괜히 심란했다. 직접 아들을 낳았음에도, 여전히 '엄마'라는 것은 불가사의의 개념이다. 새삼스레 깨닫는다.)
@Impande 임판데의 어머니는... (눈을 느리게 깜빡인다. 그러고 보니 줄리아와 어머니가 같다고 했던가. 줄리아는 그 이야기를 몹시 싫어했기에 그는 더 묻지 않았고, 정확한 사정을 몰랐다. 말을 찾아 한참 더듬거린다.) ...어떤 분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이 나이 먹고 이런 소리 하는 게 이상한 건 아는데...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당신의 아들이 초상화를 올려다보며 종종 조언을 구하듯이. 상대가 완벽하지 않고 괴로움이 많을 뿐인 한 명의 개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식의 세계는 부모이기에, 언제나, 언제나 갈구하고, 의탁하고, 끝없는 이기심을 담아 요구를...)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유는 없어요. 그냥... (두 손을 깍지 끼고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웃는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차라리 어머니에게 오블리비아테라도 쓰고 싶어요. (...)
@Impande 하⋯. (뺨에 닿는 손이 얼음장처럼 차다. 얼어붙은 심장이 까마득한 밑으로 추락하는 기분이다. 당신을 멍하니 바라보다 헛웃음을 흘린다.) 매정하긴⋯. 그거 알아요? 당신 진짜 매정해요. 로간이 가여울 정도로요. 나야 실책이라도 있지만, 그 애는 네 잘못이 아닌 일로 평생을 부족한 사랑에 허덕이며 살겠구나 싶어서⋯.
(그러나 이 또한 도망. 본론은 다른 곳에 있다. 눈을 길게 감았다 뜨고 쉰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뭐가 그렇게 두렵냐고 하셨죠, 임판데. 나는 지금껏 분재를 가꾸듯 내 삶을 돌봤어요. 불필요한 가지는 쳐내고 보기 좋게 이파리를 가꾸었죠. 그런데 처음으로 내가 내치기 전에 날 내친 게 하필이면 내 뿌리였던 거예요. 그땐 몰랐는데 그 뒤로 내 삶은 천천히 말라가서⋯.
@Impande (입을 다문다. 한참 허공을 바라보더니 다소 짓궂게 덧붙인다.) 있잖아요, 뿌리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일종의 권력인 것 같아요. 모두가 뿌리로 살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은 잘려나가면 그대로 죽어요. 삶이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가지나 꽃이나 열매에 불과해서. 물 담은 화병에 꽂아서 얼마간 시들시들하게나마 살려둘 수도 있겠지만, 그저 그뿐이죠. 하지만 뿌리는 홀로 있어도 죽지 않으니 얼마나 좋아요⋯.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의 애정이나 인정 없이도 홀로 온전한 채로. 그러지 못해서, 나는 내일이 무서워요. (그리고 말이 없다.)
@Impande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어 깊은 허탈감이 찾아온다. 늙은 집요정 하나에게도 있는 마음 깊이 사랑을 나눌 대상이 나에겐 없어서.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에 약하고, 나만을 위하기에 비굴하며, 홀로 행복하길 바라서 나날을 견디기 어렵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내 부상당해 괴로워하는 짐승이 낼 법한 소리로 변질되고. 당신이 이끄는 대로 어깨에 기댄다. 모자를 벗기고 등을 토닥이는 손길을 내치지 않는다. 호그와트로 가야 한다, 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이대로 아주 오랫동안 잠들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어서.)
(불규칙한 숨소리와 함께 잘게 들썩이는 몸. 다만 감긴 눈꺼풀 사이에 물기는 비치지 않는다. 그는 슬퍼하지 않으매 복 없는 자다. 사무치도록 드넓은 세상이 머리를 짓누르는 것이 생생히 느껴진다. 느리게 투정한다.) 내게도 집요정처럼 맹목적 애정을 주는 가족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Impande 내가 애정을 주지 않아도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 명을 지나치게 사랑해 망가지는 영혼을 그는 많이도 보았다. 누군가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은 바로 그 누군가로 인해 죽게 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에 살고자 하는 자는 사랑을 주는 일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한 바구니에 모든 것을 담지 말라. 개인이 아닌 세상을 사랑하고, 거두어들일 수 있을 정도의 마음만을 내주어라... 그것이 지기 싫어하는 그의 정언 명령. 그런데 요즘은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든다. 바로 그 이유로 그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싫어... (당신의 소매를 가볍게 쥔다. 당신은 자신이 포스틴 린드버그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애처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당신의 그 무심한 얼굴이 싫어요. 강하고 매정한 모습이 견디기 힘들어요. 정말로 외롭다면 몸서리쳐야죠.
@Impande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피로했던 탓이었을까.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희미하게 선잠에 빠져든다. 아버지는 아침에 돌아올 거란다. 집으로 돌아오세요, 우리의 집으로. 조용히 조용히 조용히 아가. 조용히 조용히 조용히 자자... ... 그 뜻은 알지 못해도.)
(그날 저녁, 그는 당신의 어깨에 기댄 채 꿈을 꾸었다. 열한 살의 당신과 뛰어노는 꿈이었다. 집요정들 인형도 있었고, 임판데가 임판데이듯 집요정들은 집요정들이매 하나이자 여럿이라서, 꿈 속에서 그는 나비를 좇으며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