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8월 25일
내 아버지는 전쟁영웅이었다!… …
나는 인쇄된 종이 속 활자를 수십 번 다시 읽어내렸다. 몇 번을 갱독해도 내용은 같았다. 키릴 문자들이 뇌리에서 개가를 올린다… 내 아버지는 전쟁영웅이었다! 43년도에 스탈린그라드를 지켰고 그 뒤로 군대를 따라 베를린까지 다녀오셨다. 유럽의 절반을 파시즘으로부터 해방시킨 고결하고 정의로운 전쟁의, 그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한가운데 서 계셨던 분!… 참전용사이자 콤소몰 간부, 훈장도 여러 개 받은 명실상부한 사회주의 영웅! 그가 내 아버지였다!
이보다 기쁜 명명일이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아버지의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를 내 얼굴에 파묻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만나러 가고 싶다. 당신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아들이 된 다음에 만나러 갈 것이다.
당신처럼, 나도 전쟁영웅이 될 것이다… …
─ 1978년 여름, 졸업 이후
나는 봄날의 꿈을 잊었다. (혹은 잊으려고 했다.) 그런 다음 총을 구하러 갔다.
당신이 이런 날 이해할까? 이해할 수 있을까?… 부탁이다. 내게 대답해 주었으면 한다.
당신이라면 내 삶을 알고 있겠지만 그냥 말하겠다. 나는 헬렌 하워드와의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최전선으로 나섰다. 죽은 이들의 이름을 전부 기억하며 지금껏 싸워왔다. 내가 아직도 전사하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조만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거라는 사실도 현실감이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더라도 그건 사실이다. 나는 나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을 뿐더러 천명했던 대로 위대한 전쟁영웅이 되었다. 파니 다누타와 판 크쥐시토프가 뭐라고 하건 난 영웅이었다.
그러니까 날 봐라. …제발 봐달란 말이다! 난 영광스러운 군인이고,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었다. 파시스트들과 싸웠다! 내가 자랑스럽지 않은가? 왜 칭찬해 주지 않는가?
그것은 당신이 모르가나 가민의 손을 잡았기 때문인가?
그 다음 있었던 일은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과거만 반추하게 되고, 당신이 듣지도 못할 말을 벽장 안에 대고 계속 속삭이고 있다. 들어달라.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아들의 이름은 미로스와프다. 미로스와프 칼리노프스키. 로신이 그 애의 대부가 되었다. 그러나 로신은 이제 없다. 어쩌면 나도 이젠 없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결국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으므로. 영웅이 되었다고 믿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대의가 없다면, 영웅이 아니라면 그저 살인자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백해무익한 이를 죽인 것인가? 혹은 ‘Der bleichen Verbrecher’?… 왜 그들은 나를 살인자라고 말하는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칼을 들고 목숨을 바치는가? 내 안에 진실은 있을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혼자다. 창 밖으로 해가 저문다. 붉은 노을은 어디에나 지고 하얀 매는 어디로든 나아간다 ─ 그러나 나는 어디에도 없다.
https://youtu.be/bAhyYgysryk?si=XbOSCJWu_2AXX6m-
그러나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시작하자.
1919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을 이끈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는 프로메테우스주의를 주창했다. 소비에트 영토에 거주하는 비러시아계 민족들의 분리주의 운동을 지원함으로써 소비에트에 대항하자는 것이었다. 폴란드는 동유럽에 ‘자유’의 불꽃을 전달하는 투사가 되고자 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다시 한 번 프로메테우스가 되었다. 동유럽의 자유민주주의 돌풍과 반정부/반소련 움직임은 폴란드 그단스크에서부터 10월의 불길처럼 퍼졌다. 횃불을 든 전위대는 레닌 조선소 노동자들이었다. 그단스크 협약…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 … 나는 크쥐시토프 삼촌이 쇠사슬에 묶여 간을 파먹히는 상상을 했다.
어쨌든 시대는 흘러간다. 내게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서.
1981년 12월 13일. 그날은 나의 스물두 번째 생일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씻고 면도하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마법부 청사로 출근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지루한 근무, 조용한 부역, 단조로운 일상. 퇴근길에 영국 머글 신문을 보지도 않고 아무거나 한 부 사서 어머니 댁으로 갔다. 어머니 댁은 안온하다. 테이블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미로스와프가 ‘아빠, 생일 축하해요Tata, Urodzinowe Życzenia’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평범한 가족 같았다.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다. 내가 사온 신문의 1면이 어머니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폴란드에서 공산 전체주의 군사 독재가 시작되다!’
대문짝만 한 제목 아래에는 폴란드 거리를 활보하는 소련제 전차와 그걸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을 담은 흑백 사진이 실려 있었다.
어머니는 골롱카가 담긴 그릇을 떨어뜨렸다. 나는 침착한 척하며 그제야 기사를 읽어 보았다. 내가 볼 때 영국 머글들은 폴란드어 단어 Stan wojenny를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지 망설였던 것 같다. 하긴 영어로는 Stan wojenny에 담긴 뜻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으리라. 뭐라고 해야 할까? 군사 독재? 전시 비상사태? 계엄령? 계엄령이 낫겠다.
오열하는 어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삼촌은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공허한 말뿐이었다. 79년 엘살바도르와 80년 남한에서 발발한 계엄령에 관해 읽었던 활자들이 내 뇌리에서 소용돌이쳤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미로스와프가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뒤섞인 언어로 질문했다. “할머니, 계엄령이 뭐예요Babcia, What is Stan wojenny?”
서방세계는 시끄러워졌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의 최후의 발악… 폴란드 전체가 거대한 감옥으로 변하다… 소련제 전차가 폴란드 시내를 점거한다… 아무튼 나는 출근해야 했다. 평화로운 마법부 한쪽 벽에는 ‘올바른 질서가 마법사 사회를 지배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하-하-하!” 갑자기 웃음이 나서 웃었다. 어째선지 눈물도 흘렀다.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잊으려 했다. 친구들과 만나고, 식사하고, 여행 가고, 뭐, 수다나 떨면서… 영국 마법사들에게는 내가 새로운 마법사 사회의 ‘질서’에 완벽히 적응한 듯이 보였을 것이다. 80년대 동안 나는 얌전히 프로파간다에 이용됨으로써 그들에게 협조했다. 한편으로는 머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정확히는 냉전의 현황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동안 내가 결혼을 세 번 더 했지만 세 번 다 이혼했다는 건 논외로 치자. 개인적인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1983년, 길었던 폴란드 계엄령이 해제된 그해, 미국 대통령 로날드 레이건은 소련을 일컬어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선언했다. 웃긴다. 그럼 너희들은 선량한 제국인가 보다. 잊었던 증오가 차올랐다, 정형화되어 편리한 방식으로. 그런 식으로 나는 죄책감을 해소하려 애썼다. 낮에는 모르가나 가민이 통치하는 마법사 사회에서 성실한 일원으로 살았고 밤에는 머글 사회에 푹 빠져 살았다. 마법사 사회에서 행하는 부역은 인정욕을 채워 주었다, 어머니는 날 자랑스러워했고 도처의 모든 게 안온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머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도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내가 폴란드 머글 대중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가? 난 그저 탱키Tankie인 걸까? 마음대로 불러라. 탱키든 코미Commie든, 빨갱이Red든… …
그리고 1985년부터 나의 세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신임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내 어머니 나이대였다. 소련 인민들에게마저 ‘늙은이들의 요양원’이라고 불리던 크렘린 관료들 사이에선 젊은 축에 속했다. 그래서였나 보다. 그는 감히 변화와 평화와 자유를 원했다. 지금의 세상은 뭔가 잘못되지 않았느냐며 불만을 표출했다. 글라스노스트Гласность와 페레스트로이카Перестройка, 대략 개방과 개혁 정도로 번역될 법한 ─ 하여튼 ‘자유’와 ‘민주주의’ 정책들을 시행하고, 핵전쟁의 공포에서 전 인류를 해방하자느니 하질 않나, UN 회의에서 “더 이상 동유럽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공표하기까지… 아니… 그만하자. 다 끝난 일이다. 가장 거대한 국가와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도 비굴한 평화를 원한 이에 대해 무엇을 더 논할 수 있겠는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난 고르바초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제2세계가 먼저 평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제1세계는 신이 났다.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이 서베를린에서 연설했다: “고르바초프여, 평화를 원한다면, 소련과 동유럽의 번영을 원한다면, 자유를 원한다면! 이 장벽을 허무시오Tear down this wall!” 이것은 나를 가장 분노하게 하고 조금은 비참하게 한 일이 아니었다.
…1988년, 남한 서울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렸다. 나는 내 아내 류바카와 함께 TV로 개회식을 보았다. 제1세계가 보이콧한 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제2세계가 보이콧한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마스코트들이 호랑인지 고양인지 모를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와 나란히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연출을 통해 보여 주려는 바는 분명했다. 자기들 딴의 평화… 내 세상을 무너뜨려야만 이룰 수 있는 그것… 올림픽 주제곡이 울려 퍼졌다.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나는 화를 내며 외쳤다. “한반도 이남을 불법 점거하는 미국의 괴뢰 정권 주제에!…”
류보프, 그러니까 류바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내가 틀린 말 했어?”
“당신 말이 맞다고 쳐도, 아무튼 저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잖아.”
“뭐? 당신은 소련인이면서, 콤소몰 출신이면서!… 어떻게 그딴 소릴!”
“평화는 좋은 거니까. 우리 딸 루샤한테 전쟁과 독재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고 싶지 않아?…”
우리는 이혼했다.
나는 고독과 죄책감 때문에, 히아신스 작전과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숱한 ‘이상적이지 못한’ 일들 때문에 잠들 수 없는 밤을 보내면서도 그러고 살았다. 그리고 시대는 이번에도 양해 없이 흘러갔다.
1989년 6월 4일, 폴란드는 ‘자유 민주주의’ 선거를 치렀다. 그 결과 하원에서는 “연대”가 전 의석을 차지했고 상원에서는 100석 가운데 99석을 차지했다. 나머지 1석이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의 몫이었다.
폴란드 인민 공화국은 붕괴했다.
나의 조국은 이제 없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없었다.)
고백하자면, 그 뒤의 일은 아무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같은 해 헝가리와 루마니아와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다음 해에는 체코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가 붕괴했으며, 동독은 서독에 흡수 통일되었다는 것이 진실일 리 없다. 이런 게 진실이라면 인간은 대체 뭔가? 머글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 아니면 야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내가 사랑하고 선망했던 너희들은 지금… …
…같은 해 12월 31일. 나는 모스크바에서 날아온 편지를 뜯어 읽었다. 편지에는 유리 스트렐니코프, 나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대조국전쟁 시기의 오래된 군복을 갖춰 입고 가슴팍엔 훈장을 단 다음 자기 집 서재에서 권총 자살을 했다고. 유언도 유서도 자살의 징후도 없었으며 지팡이는 부러뜨려서 가지런히 탁자 위에 둔 상태였다고… …
여기서 밝히자면, 내 특기 마법은 순간이동이다. 런던에서 로스앤젤레스나 베이징까진 무리였지만 모스크바나 로마로 순간이동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저그런 실력의 마법사가 순간이동에만 능숙하다니, 이름 높은 칼리노프스키의 피가 이런 데서만 빛을 발한 건지, 내가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을 때도 나는 확실히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11년만에 향한 붉은 광장은 내가 원했던 ‘어딘가’가 아니었다. …말하지 말자. 나만 괴로워질 뿐이다.
길바닥에서 단 돈 몇 달러─하다못해 몇 루블도 아니고!─에 팔리고 있던 소련 훈장들. 단지 그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고 싶어진다. 내 유년을 이루던 것들은 값싼 상품이 되었다.
내게 위안이 있다면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택한 숭고한 방식이었다. 당신은 실로 전쟁영웅이다. 나는 유리 스트렐니코프의 결단에서 아름다움까지 느꼈다… 그래… 죽을 거면 이렇게 죽어야지. 이런 게 진정한 군인이자 공산주의자다운 죽음이지!…
나도 죽을까? 수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처럼 전쟁영웅이 되지 못했다. 영광스러운 죽음은 나 같은 작자의 것이 될 수 없다. 아버지는 파시스트에 맞서 4년을 싸웠으나 난 1년도 견디지 못했고… 지금은 파시스트들에게 협력하고 있다…
아니. 아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왜 파시스트인가?
머글들은 야만을 택했다. 평등과 해방보다 소시지와 햄을 더 귀하게 여기는 족속들. 뻔히 눈앞에 보이는 차별과 그 해결 방법을 모르는 척하며 ‘사회주의는 인간이 가지기엔 너무 고결한 정신을 필요로 했다’고 변명하는 비겁한 놈들. 우리를 악하다고 단정짓고는, 자신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떠들어대는 위선자들. 자본주의 국가의 병폐에는 그게 게임의 법칙이라고 큰소릴 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병폐에는 정색한다. 우리가 독재를 했다고 치자.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에는 독재가 없었단 말인가? 너희 세계의 독재자와 전쟁범죄자들, 예를 들어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그레고리오 알바레스, 박정희와 키신저를 가리켜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하지는 않는다. 개선되어야 할 내부 문제로 치부되었지 이념 자체의 잘못이라고 하지는 않았고, 그들이 통치하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지도 않았다… … 됐다. 그만하자… … 아무래도 좋다… …
뭐가 옳고 뭐가 진실인지 따위는 상관없었다… … 지금까지 뇌까린 모든 비판과 비난은 헛소리고 진심이 아니다, 내게도 세상에도 진실은 없었으니까… … 어쩌면 ‘우리’도 걸맞은 표현이 아니다… … 내 세상… 내 조국… 내 기억… 내 삶 그 자체… … 너희들은 그걸 부정했다. 그게 다다.
더는 살고 싶지 않다. 머글들은 끔찍하다. 내가 사랑했던 그들은 이제 없다. 붕괴한 시대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제 야만이 찾아올 것이다. 서방세계는 진정한 평화가 어쩌니 하며 헛소릴 했지만, 나는 안다. 자본주의를 도입한 폴란드에서는 수백만 명이 갑자기 실업자가 되었고 새로운 정부는 ‘자본주의란 이런 겁니다’라며 그들을 도와 주지도 않았다. 수만 곳의 국영 유치원이 문을 닫자 노동계급 여성들은 ‘집에서 애나 봐라’는 말을 다시 듣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민영화 때문에 국민 절반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지만 극소수는 아주 많은 부를 얻었다. 폴란드판 올리가르히들.
한때 내가 사랑했던 레닌 조선소─그단스크 조선소로 개칭되었다─는?… 미국 재벌이 그단스크 조선소를 사들이고 싶어했다. 오직 반공주의의 상징으로 쓰고 싶어서. 그러면서 조건으로 내세운 건 5년간 파업 금지와 노동자 임금 50% 삭감이었다. 크쥐시토프 칼리노프스키, 이게 당신이 바라던 미래인가요?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승리’?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쇠사슬에 묶여 간을 파먹혀 보니 어떻습니까?…
삼촌은 머글들을 믿었고 배신당했다. 나도 머글들을 믿었고 똑같이 배신당했다. 하지만 폴란드 마법사들은? 스스로 봉쇄령을 내리고 안전지대 안에서 살아가던 그들은… 놀랍도록 평화로웠다. 현재진행형으로 다사다난한 역사 탓에 신의 놀이터God’s Playground라고 불리는 폴란드 땅에서도 그들만은 충만한 삶을 누렸다. 영국 마법부를 통해 알음알음 들은 소식에 의하자면 그랬다!… 점차 그곳이 이상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폴란드 안전지대의 수장들은 모르가나 가민과 똑같은 논리로 세상을 규정하는 이들이었다. 봐라. 폴란드 마법사 사회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잘 봐라! 죽음을 먹는 자들은 파시스트가 아니다. 그들은 현명했다. 배타주의야말로 야만적인 머글들로 오염된 세상에서 마법사가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다. 무엇보다도 나는… 나는 정통성 있는 칼리노프스키 가문의 아들 아닌가? 한때 동유럽 유수의 명문가였던 칼리노프스키 가문이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머글 때문이었잖은가? 어머니가 옳다. 삼촌은 틀렸고, 아버지도 틀렸고, 어머니야말로 올바른 분이셨는데…
내 믿음을 배신하고 내 세상을 무너뜨린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다. 그들을 죽이고 싶은 거냐고? 아니다. 그들은 어차피 스스로 무너져내릴 거다. 그들의 끝없는 탐욕과 이기심은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 시장경제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지구 환경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부르주아들은 입막음한다.
마음껏 과다 소비를 즐기고 돈의 계율으로 ‘모든 것을 허용한다’. 계급의식을 상실하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더러운 욕망이나 지닌 프롤레타리아들도 똑같다. 공범이다. 그렇게 자본주의의 멍에 아래 공멸하겠지… 다 죽어버리겠지… 좋다! 다 죽어버리라고 하자!…
이것은 익숙한 증오다. 동시에 익숙한 무력감과 회의주의가 들어찼다. … …죽음을 먹는 자들이 그릇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사실은 안다. 아는데, 믿고 싶을 뿐이다. 믿고 싶어서 믿는다. 내가 의지할 대상은 붕괴해버렸으므로. 남은 것은 순수 혈통 마법사라는 나의 존재뿐이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돌아가자.
우리 칼리노프스키 가문은 15세기 폴란드 왕국 야기에우워 왕조 시대부터 시작된 유서깊고 순수한 마법사 가문이다… 1689년, 국제 마법사 비밀 법령 이전까지는 유럽의 여러 정치적 판도를 막후에서 혹은 전면에서 뒤흔들기도 했다. 훌륭한 위인들을 여럿 배출했다. 현 리투아니아 땅에 위치한 마법학교 모세두카의 설립자는 내 조상이다. 안전지대라는 모든 마법사 사회의 모범이 될 공동체를 만든 것도 내 조상이다. 하-하-하… …
나를 받아 주는 세상은 이제 마법사 사회밖에 없다. 머글이 밉다. 그렇더라도 그들을 대상으로 맹렬한 증오와 살의를 내보일 힘은 내게 없다. 나는 여전히 회의주의자다. 내 안에 진실은 없으며 세상은 모조리 거짓이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을, 아까 말했다시피, 나 자신도 믿지 않는다. 나는 그저…
또다시 톱니바퀴의 일부가 된다.
마법부 청사에 가서 부서 이동을 신청했다. “칼리노프스키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머글 태생 등록 위원회의 서기직이 공석이지 않던가요?…” 그 누구보다 근면성실하게 일했고 금방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부위원장 직함을 달기까진 어렵지 않았다. 관료가 체질일지도. 총리 각하께서는 노력 마법사 훈장을 주셨다. 기왕이면 멀린 훈장을 받고 싶었지만 톱니바퀴는 순응하는 법이다. 어느 순간부터 승세는 불사조 기사단 쪽이 잡았지만 그딴 것, 나와는 상관없다. 그들도 언젠가는 몰락하고 붕괴할 것이다. 난 조용히 명령을 이행함으로써 몰락과 붕괴에 일조한다. 내가 복수하는 방법은 이런 것이다.
장벽과 장막 안쪽, 담금질과 균열 없이, 파불라와 슈제트 가장자리에서.
지긋지긋하고 역겨운 삶…
하지만 말이다. 나는 ‘세상은 모조리 거짓’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거짓이더라도 내 것으로 남은 게 하나 있다. 나의 것. 나를 이루는 것. 언덕 위의 작은 집. 내가 아직 꿈을 꾸던 나날. 외로울지언정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던 유년. 나는 과거를 흉내 낸다. 모형정원을 만들고 그곳에서 즐거워한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 번역되지 않고 불가해한 우리들 자신의 영혼에 관해서다. 두 나라에서 한 나라가 되어도 모든 것을 단어로 만드는 독일인의 습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통독으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Ostalgie’라는, 폴란드어로도 영어로도 딱히 번역되지 않는 독일어 단어가 탄생했다. 구태여 옮기자면 ‘동독 시절을 그리워하다’, ‘시대착오적 사고방식’, ‘동독인의 정체성’, ‘호모 소비에티쿠스Homo Sovieticus’ 등 여러 의미를 포괄하는 개념이 될 것 같다.
나의 모형정원을 이루는 요소들은 그런 것이다. 모호하고 구식이고 거짓되었지만 그리움만은 진실이다.
그러니까… 모형정원과 사랑하는 가족만 있다면 난 괴롭지 않다. 두려움도 없다. 지금의 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이라곤 21세기뿐이다.
1999년 3월, 폴란드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정식 가입했다. 서방에 맞서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심장이었던 폴란드가 이제는 동방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있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유럽 연합에라도 가입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 나는 21세기가 두렵다. 영원히 20세기에 머무르고 싶다. 아니다, 새 천 년이 오더라도 아마 괜찮을 거다. 바깥 세상이 21세기가 되건 말건 나는 나의 모형정원 안에서만은 20세기인으로 남을 거니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