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VERGREEN_
(뒤에서 가볍게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난다. 발을 디뎠다.)
@yahweh_1971 ⋯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손 안에서 당신의 눈을 닮은 푸른 아네모네가 흩날린다.) 높은 곳은 무섭다면서.
@2VERGREEN_
(이름을 모르는 꽃이다. 연약한 꽃잎을 잠시 지켜보다 더욱 다가갔다. 옥상의 끄트머리까지 옮긴 걸음은 뚝 멈춘다. 난간 없는 절벽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 별로. (강력하게 제조한 진정제는 여전히 효과가 있다. 조금 휘청이다 물러섰다.) 다 봤어?
@yahweh_1971 글쎄. ('얼마나 오래 보아야지 다 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 당신이 휘청거리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붙든다. 그 덕분에 끝없이 내리던 꽃비가 그친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당신을 붙든 순간에, *무언가*를 인지한다. 그것은⋯ 느리게 웃는다.) 천하의 헨 홉킨스도 이건 견디기 힘든가 보지⋯.
@2VERGREEN_
(참상을 기억에 남기고, 과정에서 벌어질 일들을 머릿속에서 그리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꽃잎은 팔락이며 떨어진다. 두어 걸음을 물러나다 돌아보았다.) 지레 겁먹은 거지. (실체 없는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보여지길 틀어막았다면.) ...... 넌? 좀 어때. 이 지루한 구경이 견딜 만해?
@yahweh_1971 (그렇다면 나는 평생토록 이곳에 서 모든 것을 바라보다, 꽃잎이 되어 흩어져야 할 것이다.) 아니, 끔찍해. (상록은 꽃이 될 수 없다. 암탉이 난새가 될 수 없듯이.) ⋯ 그런데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중요하기나 하겠어? 헨, 네가 원하는 세상이 찾아올 거야. 넌 기뻐해야지⋯.
@2VERGREEN_
기뻐한다고? (생경한 소리라도 들은 양 따라 읊조린다. 시선은 내려간다. 꽃잎보다도 무수하게 흩날리는 사체들이 저 지하에 있다. 짓이겨진 나의 친애들이, 피아와 관계없이 스러진 인명들이 저곳에 있었다. 그러나 새 시대의 서막 또한 깨어난다. 이는 헷갈리는 일이다. 지금은 기뻐해야 하는 시간인가?) ...... 끔찍해, 아니..... 기쁜가. 잘 모르겠네. (손끝은 입가를 누른다. 잠시 고민했다.) 일단은 네 기분이 나아졌으면 좋겠어. 아, 그러려면 '부역자'인 내가 비켜줘야 할까.....
@yahweh_1971 ⋯ 혁명이, 새로운 세상이⋯ 이 정도의 피와 희생 없이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면 오산이지. ⋯ 그래, 넌 로베스피에르나 생 쥐스트는 못 되나 보다. (다행이었다. 당신이 적어도 스러지는 친애 앞에서 합당하고 마땅히 일어나야 했을 일이라고 뻔뻔하게 합리화하기 바쁜 이들과는 달라서.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속이 울렁거렸다.) 가지 마. 곁에 있어 줘. ⋯ 자리 비키기만 해봐. 죽을 때까지 미워할 거니까, 각오해.
@2VERGREEN_
그것도 모르는 일이고. 절친한 친구 머리통을 보며, 그 혁명가가 무슨 생각을 했을진......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할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의 손을 잠시 내려다본다. 그 또한 할 일을 했다. 이것을 다르다 말할 수 있는가?) ...... 애도하는 시간은 오늘 밤까지야. 이후로는 다시 할 일을 할 거야. (꼭 미움받으려 하는 말 같다. 깨닫곤 자조했다. 이곳을 떠나버린다면 손쉽게 얻어낼 수 있을 그 미움.) ..... ...... 저 애들을 사랑했어.
@yahweh_1971 ⋯ 새삼스러운 말을 하네. 그래, 이 박애주의자야. 울 만큼 울어, 소리치고 싶은 만큼 소리치고. 밤이 깊어. 아무도 듣지 못할 거야⋯.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머리가 날린다. 힐데가르트는 탑을 오르던 당신을 회상한다.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나는 운명이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남길 바란다고 했던 그 밤을 떠올린다.) ⋯ 그리고, 헨. (웃는다.) 나도 저 애들을 사랑했어. 너를 사랑했어. 네가 그리는 새로운 세계에 내가 자리할 수 있길 바랐어. (간극. 이것은 고해다.) 난 협력자가 될 거야. 영원히 기사단원은 되지 못하겠지만, 역사 속에 사라지는 이름 없는 혁명가가 될 거야. ⋯ 그래,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친애할 수 있는 시간도 오늘이 마지막일 지 모르겠다.
@2VERGREEN_
(그러지 마. 생각하지만, 이것은 월권이다. 그는 무언 방법으로든 당신에게 행동을 강제할 수 없다. 대신 떨어지는 시가지를 보며 쪼그려 앉았다. 두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리려 할 즈음에야 익숙한 공포가 찾아온다. 결국 땅에서 발을 떼진 못했다. 그는 무슨 방법으로든 날 수 없다.) ...... 박애주의자? (작게 코웃음쳤다. 그야말로 결국 편애와 차별로 이루어진 내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죽인 애들마저 사랑해. 내게 지팡이를 겨누더라도 사랑하겠지. 하하...... 뭐, 사랑해봤자 딱히 의미는 없긴 한데. (그들은 결국 저곳에 갇혔고, 나는 이곳 옥상에 웅크리고만 있으니.) 네가 무슨 길을 걷든 친애할 거야. 영영 그러겠지.
@yahweh_1971 (그러나 당신과 달리, 그는 한 번도 하늘을, 추락을 두려워해본 적 없었으므로. 당신의 옆에서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앞뒤로 흔들어댄다. 힐데가르트가 당신의 숱한 고민을 알고 있었다면 이리 말했겠지만: '사람은 원래 나는 동물이 아니야.', 그는 레질리먼서도 무엇도 아니었다.) ⋯ 와, 방금 생각한 건데 나도 누군가에게서 정확히 같은 단어를 듣고, 비슷한 반응을 했었거든. 걔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딴소리.) 너도 너무 물러서 탈이야. 하하, 그래도 나만큼이나 다른 애들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기쁘다. ⋯ 있잖아, 나는⋯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 (다시 한 번의 침묵.) 나도. 네가 갑자기 사이비 교주가 되지 않는 이상은 영원히 널 친애할 거야. 하지만 이전처럼은 될 수 없으리라는 이야기지⋯.
@2VERGREEN_
(나처럼, 당신도 박애주의자가 아니니까. 단어의 의미는 다양하므로, 그는 박애주의(*Philanthropism)의 의미를 제멋대로 축소한다. 그것은 현실의 상황에 기반하는 사랑과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다.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며, 따라서 그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관념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목적이야 서로 달랐겠지만.) ...... (기뻐할 일인가? 비비꼬여 되물으려던 말은 삼킨다. 얌전히 콘크리트 위 누운 발끝이 까닥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각기의 대상은 다르겠지만. (개인을 향한 사랑과 세계를 향한 사랑, 자신을 향한 사랑...... 마지막 말에 이르러선 잠시 당신을 봤다.) ...... 드디어, 이제 전과 같은 건 아무것도 없네. 우리 학창 시절과...... (사이. 그러나 웃었다.) 그건 조금 슬픈 것 같아.
@yahweh_1971 (힐데가르트는 다시 한 번 감히 질문한다: 목적이 달랐기에, 그 형태도 너무나 다른 길로 나타났지만. 제 곁에 남아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싶었던 우리의 어린 마음은 같지 않았을까?) 그러게. 모든 게 바뀌어 버렸어. (다리를 허공으로 늘어뜨린 채로 아래를 바라본다. 아득하다. *날아오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싶었다. 사람은 날짐승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 하지만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지. (그러나 당신과 같이 모든 것에서 날아오를 수 없었던 그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 시절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존재치 못했을 거니까. ⋯ 우리를 만들어준 유년에게 감사하고, 나아가야지 않겠어? (입가를 느리게 만지다 작게 웃었다. 어느 순간 제 웃음은 당신의 것을 닮아 있었다.)
@2VERGREEN_
감사하기만 할 수 있길 바랄 뿐이야. 네 말마따나 나아가야지. (대답하는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있다. 그러나 당신의 말은 깊다. 그것은 우리들의 대화를 통틀어 드물게도 그가 깊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억은 인간을 이룬다. 단순히 추억하며 감정을 고취시키는 것만이 기억의 역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기억과 사고, 의지로 이루어져있다. 당신들은 나를 이룬다. 거기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이 사실상의 맹점이 되겠지만.) ...... 혁명가가 되고 싶은 건 알았어, 이제 그건 알았는데...... (사이.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목소리를 고친다. 덧붙였다.) 네 목숨보다 우선하진 마. 멍청한 짓거린 안 하겠지, 힐데?
@yahweh_1971 (그 모든 시간이 우리를 이루고 있다. 그 시간 중에 하나라도 빠졌더라면, 우리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지어졌을 것이다. 내가 당신을 이루고, 당신은 나를 이룬다. 그렇기에 기실 한 번 서로의 삶에 발을 들인 이들은 불가분의 관계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기사단원은 못할 거라니까. 애초에 소시민에게 목숨을 버리면서 투쟁할 기회가 주어질 지에 대해서부터 생각해보지 그래? (⋯ 그러나 장난스러운 눈빛만은 여전히 당신의 것을 닮지 못해서.) 넌 앞으로도 기자로 살 생각이야? (문득.) ⋯ 얼마 전에, 네 이름을 단 기사가 1면에 실렸었잖아. 젠장, 네가 나한테 그런 식으로 잔소리할 계제가 아니지 않아⋯?
@2VERGREEN_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지. 미안, 네 사상과 명예보단 생존이 내겐 더 중요해서...... (그러나 죄책감은 없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곡예를 하는 이들을 친애하며, 언젠가부터 그는 친구들의 생존만을 기도하게 되었다. 슬픔은 생존 이후에서야 이루어지는 감정이다. 당신에게 슬퍼하지 않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어차피 당신 슬픔의 말소는 그가 모든 길을 걸어 이루어낼 것이다.) ...... 그리고, 그딴 일로 죽어나갈 일은 없어. 난 내 목숨줄 하나는 확실하게 챙기거든. 아직 할 일이 꽤 남았으니까- 벌써 비명횡사하는 건 말도 안 되지. 너도 비슷하게만 조심해. (그러니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하여 수혜자가 되길.)
@yahweh_1971 미안할 건 없어. 나도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가끔은 제 친우들이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 같은 자리에 서서 제가 믿는 것을 외쳐대는지. 순식간에 바스라질 것만 같은 몸을 붙들고, 울고 있는 내가 보이지 않냐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때가 있었다. ... 살아있는 내내 나는 슬플 것이다.) 너 나름대로는 충분히 영리하게 굴고 있겠지만서도, 바깥의 사람이 보기에는... '날 잡아 잡숴라.' 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거든. 멍청한 건지 — 그런데 래번클로 출신인 주제에 이래도 되는 거야? —, 용감한 건지 가끔 잘 모르겠다니까... (느리게 투덜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이는 그것을.)
@2VERGREEN_
(그러나 별은 쏟아지지 않는다. 세계가 뒤집어지더라도 되려 우리가 밤하늘로 쏟아질 것이다. 그것은 추락인가? 혹은 비상인가?) ...... 기왕이면 용감하다고 해줄래? 가진 게 머리뿐이라. (그러나 둘 다 아닐 것이다. 맹목은 그저 맹목이다.) ...... 힐데. 그래도, 죄와 목적은 별개지?
@yahweh_1971 (혹자는 그것을 추락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밤하늘을 유영하게 되는 것이라면, 추락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 ... 별개라고 하자. 안 그러면 우리 둘 다 답도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는 죄인이 되어버릴 테니까.
@2VERGREEN_
하지만...... 넌 어디서도 죄인이 아닌데. (그 어떤 세계관에서도, 밤하늘이 뒤엎어지고 세상이 쏟아져내려도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 꽃대만 남은 꽃을 보곤 흐리게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