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ed: 2024년 08월 24일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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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VERGREEN_

2024년 08월 24일 23:34

(세상이 바뀌었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 오르치데우스. (최후의 격전지가 보이는 어느 건물의 꼭대기에 올라 —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호그와트의 탑 위에 서 있던 시절을 잠시 떠올렸다. — 피어난 갖가지 색채의 꽃들이 제 손을 떠나 낙하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여름의 바람이 제 얼굴을 스친다. 꽃과 함께 눈물이 방울져 아래로 떨어진다. ⋯ 이것은 과거를 향한 길고 긴 그만의 애도가 될 것이다.)

Ludwik

2024년 08월 25일 00:20

@2VERGREEN_ (떨어져내리는 꽃들. 그는 꽃비를 맞으며 장례식의 주관자를 올려다보았다. 이내─ 순간이동을 ‘성공’했고, 힐데가르트의 옆에 서 있다. 그러곤 말을 건넸다.) 이거 꼭 동화 같네. 성경 속 이야기 같기도 하고.

2VERGREEN_

2024년 08월 25일 00:25

@Ludwik ⋯ 그러게. ('향할 곳이 생겼구나.' 그는 당신을 돌아보지 않은 채 여전히 흩날리는 꽃을 응시한다. 마침 국화가 낙화하던 참이었다. 비록 자홍색이기는 하지만.) 이게 다 동화였다면, 성경 속의 이야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Ludwik

2024년 08월 25일 01:33

기독교 신성모독

@2VERGREEN_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성경은 우스운 옛날 이야기고 동화는 거짓이니까. (향할 곳이 생겼기에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잿빛이 남아 있었다. 한 번 폐허가 된 인간은 그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법이므로. 그리고 이 세상도 그렇다. 다시는 1981년 8월 25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

…있잖아. (루드비크의 시선 역시 아래로 향해 있다.) 나 오늘 명명일이야. …소르브인들한테도 명명일 문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전쟁이 어떻고 미래가 어떻고 따위가 아니라,) … …축하해 주지 않을래. (투정이다.)

2VERGREEN_

2024년 08월 25일 02:09

@Ludwik (당신의 그 말에서 다시 한 번 직감한다. 당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어떤 확신이다. '⋯ 그래. 정말 네 세계에는 내가 존재치 않겠구나.' 그러나 투정하는 소년 앞에서는 세상이 어떻고, 미래가 어떻고, 전쟁이 어떻냐 따위의 질문은 흐려졌다. 힐데가르트는 선선히 웃으며 팔을 벌린다. 내일이면 또다시 우리는 서로의 길을 걸어가야 할 텐데, 그렇다면⋯. 딱 한 번만이라도, 모든 세월을 거슬러 안아보고 싶었다.) 몰랐네. 엄마한테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 우리 엄마는 종교 얘기를 안 좋아하시거든. — 대부분이 가톨릭교도니까, 있지 않을까.

축하해, 루크. (당신과 내가 친구가 되었다면, 부르고 싶었던 이름이었다. 열 해를 거슬러, 결국 부르게 된 이름.) 선물로는 뭘 줘야 할까⋯.

Ludwik

2024년 08월 25일 22:41

@2VERGREEN_ 어머니한테 소르브 얘기 많이 해달라고 해. 대부분이 가톨릭교도면 안 좋아하시더라도 아는 건 있을 거 아니야. …자기 뿌리를 기억하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 그러니까, 전쟁도 끝났으니 동독에 가 보지 그래, 작센 말이야. (하지만 도중까지는 함께하고 싶었다. 이 또한 투정이다. 너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따라서 말한다.) …나랑 같이 가도 되고. … …싫음 말고.

(동독 여행을 명명일 선물로 요청하긴 뭐 했다. 그는 루크라는 호명에 웃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두 팔을 벌린 힐데가르트에게 안겼다. 그러고는 말이 없다.)

2VERGREEN_

2024년 08월 26일 03:39

@Ludwik ⋯ 민족주의자 같은 소리를 하네. (이어지는 당신의 말에 조금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가, 결국은 작게 웃는다.) ⋯ 너만 괜찮으면 같이 가자. 함께 다니지 않아도 좋아. 같은 유럽이라지만 기차든, 비행기든, 가는 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 긴 시간 동안 말동무 해 줄 사람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겠어? (팔에 힘을 주어 당신을 꼭 끌어안는다. 잠시간 침묵한다. 귓가에 제 것인지, 당신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맞닿은 몸에 일정한 박자의 고동이 느껴진다.)

명명일은 생일과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 쯤은 알고 있어. (나지막한 목소리.) 네가 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에는 분명 의미가 있겠지. (다른 무엇도 아닌 당신의 이름을 가진 채로 내 앞에 있어주어서, 살아있어 주어서, 태어나 주어서 고맙다고. 뒷말은 삼킨 채로 살며시 눈을 감는다.)

Ludwik

2024년 08월 26일 19:59

@2VERGREEN_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관두기로 했거든. 민족주의도 개중 하나지. (괜히 무심한 척하는 태도로 답했다. “같이 가자”, 그 말에, 눈에 띄게 기뻐하지 않기 위함이다. 안기고 울고 토하고 할 거 다 했으면서 아직도 뭔 허세를 부리려는 건지…) 네가 정 원한다면야 같이 가 주지, 뭐. 가는 길에 심심하면 폴란드어라도 가르쳐 줄게. (여성명사 남성명사 중성명사 주격 소유격 여격 목적격 조격 처소격 호격…에 따라 단어의 형태가 다 달라지니까 정말로 심심하진 않을 거다. 독일어와 체코어를 잘하며 소르브어를 어릴 때 배웠던 힐데가르트라면 상대적으로 쉽게 익히지 않을까?)

난 몇 년 전에 동독 가 본 적 있으니까, 내가 가이드를 해 줄 수도 있고. … …

Ludwik

2024년 08월 26일 20:00

@2VERGREEN_ 너 안 싫어해. (고동과 온기 속에서 눈을 감고, 불현듯.) …저번에 네가 그랬었지, “너도 내가 싫잖아”…라고.

아니야. …너 안 싫어해. (그때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러니까 같이 가자고 한 거야. (루드비크, 이 이름의 의미는 ‘전사’였다. 그리고 전사의 가장 큰 행복은 전쟁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의미. ‘그걸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 계속 내게 상처만 줄 거야. 하지만 네게 명명일을 축하받고 싶었어, 대체 어째서일까… 네게 상처를 받는데, 동시에 위로도 받아. 나도 참 징글맞네… …’)

2VERGREEN_

2024년 08월 26일 23:02

@Ludwik 이제야 얘기하는 거지만, 폴란드 얘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는 너도 제법 민족주의자 같은 거 알아? (장난스럽게 웃는다. 네가 기뻐하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어. 허세 떨기는⋯.)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가이드 노릇은 제대로 준비해두는 게 좋을 테고.

⋯ 그래, 가르쳐 줘. 네가 어떤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지에 대해 알게 되면 널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지⋯. (우리는 기표에 얽매어 기의를 표현하며 살아가니까. 폴란드어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당신의 이름이 전사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는 당신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제 어깨에 기댄 당신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달빛에 검게 비치는 다갈색의 고수머리를, 꼭 어린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2VERGREEN_

2024년 08월 26일 23:02

@Ludwik 나도 너 안 싫어해. 이제서야 말하는 거지만, 처음 학교에 가는 기차에서 너한테 시비를 걸었던 건. (간극.) 너랑 친구가 되고 싶었어. 학교에 오기 전, 너를 본 적이 있었거든. (우리는 영원히 친구가 되지 못할 거고, 오늘 밤이 지나면 또다시 서로를 끝없이 상처 입게 만들 지도 모르지만⋯.) 이제 와서 이야기해보았자 다 쓸모 없겠지만⋯ 그래도, 고마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하고자 하는 나도⋯ 참 징그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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