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W ... (동쪽 탑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저기서 뭐하는 거지? (당신을 보고서는 애써 무시하고 지나간다. 다시 서쪽으로.) 내 알 바 아니긴 한데... (다시 동쪽으로, 두어 번 방향을 바꾸어 계속 오가다 결국 신경이 쓰였는지 다가와 당신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림 감상해?
@2VERGREEN_ 왜 혼잣말을 하나 했더니... (하며 힐데가르트를 마주본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핀갈이 여기 근처에서 갑자기 사라졌거든요. 학교에서 순간이동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한다.)
@LSW ... 들었어? 못 들을 줄 알았는데. (머쓱한 듯이 머리 긁적이다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한다.) 몰라, 걔가 우리 중에 학교에 있는 비밀 통로 같은 거 제일 잘 알 걸? 우리가 모르는 걸 통해서 또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거겠지. (팔짱 낀 채로 태피스트리를 바라본다. 정말... 이걸 그린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근데 핀은 왜?
@2VERGREEN_ 역시 그렇겠죠. 하지만 비밀 통로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그런 걸 대체 어느 말썽장이에게서 듣고 용케 알아내는 건지 원... (무심코 힐데가르트를 따라 홀로 팔짱을 낀다. 둘은 나란히 태피스트리를 바라보는 자세가 되었다.) 핀갈 말이죠, 계속 절 피해요. 겨울부터 지금까지 내내.
@LSW (당신이 말하는 '어느 말썽쟁이'는 여기 옆에 서있는데. 6년 동안 오로지 말썽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로 호그와트를 제 집처럼 돌아다니면 된다고 말해줘야 하나, 쓸데없는 고민을 해본다. 배어나오는 웃음 참으려 팔짱 낀 채로 한 팔 들어 제 입 가린 채로,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 나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아. 그 무렵부터 다들 피하기 시작했으니까. ... 꼭 너라서 피하는 건 아닐 지도 모르겠다.
@2VERGREEN_ (물론 레아도 그 말썽쟁이 후보에 힐데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얼추 반장 감투를 쓰고 있다고 해도. 되려 힐데를 빼먹으면 서운하다. -그래서 힐데가르트를 곁눈질한다. 이쪽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 어쩌면 힐데가 그 래번클로 동기를 숨겨줬을지도 모른다는-근거 없는-의심을 속으로 하고 있다.) 아마 그렇겠죠. 저라도 그럴 거예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어떻게 알았는지 아주 멀리서부터 꽁지가 빠져라 도망간단 말이죠. 이 근처에 비밀 통로든 눈속임 장치든 사람이 들어갈 크기의 생쥐굴이든 있을 게 분명한데 영 찾을 수가 없으니까... (힐데가르트를 마주본다.) 뭐, 아는 거 없어요? 없을 리가 없는데. 내로라하는 장난꾸러기잖아요.
@LSW (그리고 힐데가르트는 장난스레 웃으면서도 충분히 레아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괜히 헛기침하고는, 당신을 마주 보았다가, 이러다가는 정말 이 태피스트리 뒤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를 들키고 말겠다는 생각에...) ... 그래, 알았어. 내가 널 어떻게 속이겠어. 이 근처에 비밀 통로가 하나 있거든. 하도 도와달라고 부탁하길래 알려줬어. 저쪽이야. (... '내일 핀을 만나면 이 통로는 이제 레아한테 들켰으니, 쓰지 말라고 해야겠다.' 생각하며 고개 돌려 반대쪽 벽에 있는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킨다. ... 묘하게 벽돌이 어긋나 있는 어느 부분을.)
@2VERGREEN_ 고마워요. 다음부터는... 좀더 빨리 이실직고해주고요. (여전히 의심하는 탓인지 아니면 생각이 많아서인지, 한참 힐데가르트의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레질리먼시를 쓸 생각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초심자라 그냥 눈을 들여다본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그걸 들키기 전에 짤막하게 인사하고는 트롤 태피스트리의 맞은편 벽으로 -그러니까 필요의 방이 있는 위치다. 레아는 모르고 있지만-다가간다. 벽돌이 어긋난 부분을 유심히 보고는 지팡이 끝으로 두드린다.)
@LSW 흠. (긍정일지, 부정일지 모르는 대답 내놓는다. - 아마도 부정의 의미일 것이다. - 어딘다 꿰뚫리는 듯한 위화감을 받지만 이건... 당신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 하루이틀이 아닌지라, 의심은 금세 지운다. 그 옆으로 서서는 익숙한 듯이 지팡이로 당신이 두드린 벽돌의 반대쪽을 두들긴다. 다이애건 앨리의 벽처럼 벽돌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름난 사고뭉치 치고는 내가 아는 비밀 통로는 몇 개 없다고... (필요의 방. 누군가를 들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 어쩐지 오늘따라 침범당하는 것이 많다.)
@2VERGREEN_ 아는 비밀 통로가 몇 없지만 유명한 사고뭉치 씨, 그런 것치고는 손놀림이 제법 능숙한걸요. (열차를 타고 학교까지 오는 내내, 그리고 대연회장에서의 식사 때도 긴장해 있던지라 '알게 되는 것'은 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힐데가르트 마치라 더 그랬다. 그래서 신경줄이 조금 느슨해진 지금은, 그 정도의 '거짓말'쯤은 넘어갈 수 있었다. 레아는 문이 생기길 기다린다.)
@LSW (그리고, 앞에서 몇 번 발걸음을 옮긴다. 하나, 둘, 셋. 문이 열리고 방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까지도, 지금이라도 네 손을 잡고 문이 열리는 순간이 보지 못하게 다른 곳으로 이끌어버릴까, 지금이라도 다시 거짓말을 해볼까 고민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없네. 자, 이제 만족했어? (당신을 휙 돌아본다. 어쩐지 냉랭한 기색이 가득한 눈빛으로.)
@2VERGREEN_ (눈이 마주친다. 지금 당장은 도망친 래번클로 동기보다는 이 신비한 방과 그 존재를 아는 힐데가르트에게 관심이 쏠려서다. 레아는 여전히, 그리고 아직 기분이 꽤 나쁘지 않다. 방 안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본다. 힐데가르트의 왼편에서부터 몇 발짝을 나서, 구두 뒤꿈치를 축 삼아 몸을 틀어 마주본다.) 네, 뭐. ...그래도 하나 물어볼 게 있네요. 여기 앞에서 세 번 움직이기만 하면 열리는 거예요? 비밀 장소의 조건치고는 꽤 싱거운걸요.
@LSW ... 지팡이로 벽을 치는 건 아무 상관 없어. 처음 이 방에 대해 들었을–아니, 발견했을 때부터 하다 보니 습관이 된 것 뿐이야. 맞아, 세 번 왔다갔다 하는 게 조건이야. (별 것 없다, 언뜻 보기에는 숨겨져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냥 먼지 냄새가 나는 평범한 방일 뿐. 이곳의 모습이 바뀐다는 것은 알려주고 싶지도 않고.) 어차피 들킨 마당에 뭘 숨기겠어. ... 고작 이런 게 그렇게 신기해?
@2VERGREEN_ (힐데가르트의 마음 안에 심어둔 불신이 형태를 갖추어 잘 피어났던 이래로 두 사람 사이의 신뢰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건 전적으로 레아의 잘못이고) - (아마 극복하기 어렵거나- 영영 극복할 수 없을 골이기도 했다.) 그럼, 신기하죠. 다른 사람에게서 그저 '들었다'고는 해도, 힐다가 찾아낸 비밀 장소잖아요. 미리 '잘 했다'고 칭찬해주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칭찬하죠. 생각해보면 그때는 제가 당신 칭찬에 꽤 박했거든요. 기억나요?
@LSW ... 단어 하나에 물고 늘어지지 말고. ('들었다'고 말했다가 금세 '찾아낸' 것이라고 고쳤는데, 그 하나도 놓치지 않는 모습이... 어쩐지 답답하다.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제 손을 들어 입술의 거스러미를 뜯는다. 언젠가부터 당신 앞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그랬지. (잠시 손을 멈춘 채로 말을 멈춘다. 그 때를 생각한다. 적어도 당신을 믿었던 그 때를.) 많이 바뀌었네, 다른 애들처럼 말이야. 이제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도 칭찬을 한 정도로.
@2VERGREEN_ 또 선을 긋네요. (이런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을 뻗어서 힐데가르트의 팔목을 쥐더니 내리게 하려는지 힘을 조금 준다. 힐데 스스로의 입술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게 하려는 의도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눈을 내리깔았다가) 저기, 너무 오래된 옛 일이지만 슬슬 졸업이기도 하니 꼬인 매듭을 풀고 싶어서요. ...그때 그랬던 건 미안해요.
@LSW 그렇다면 내가... 너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레아? (붙잡힌 손목을 잠시 내려다보다 거칠게 뿌리친다. 그 의도대로 곧 손을 거두긴 했지만.) ... 정확히 어떤 때를 가리키는 건지 정확하게 말해. 그 소문을 흘리고 원하는 대로 내가 남을 상처 주고, 상처받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을 때? 아니면, 나를 손에 두고 관찰할 수 있는 실험쥐마냥 다루고 있었을 때? 당장 내가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렇게 많은데, '그때'라고 얘기하면 어떻게 알아.
@2VERGREEN_ (또다. 항상 이것이 문제다. 레아는 자신이 '화해'를 청했다고 생각했다. 그걸 거절하는 건 힐데가르트다. 원만히 지내려면 사과를 받는 것이 '맞는데' 힐데가르트는-언제나-거리를 벌렸다. 레아는 짐승이 머리를 조아리듯이 눈을 내리깐다. 발화가 오래 전 어느 때와는 정반대의 양상을 띠는 건, 그가 근래의 고민으로 다소 초조하기 때문이다.) 전부 다요. 힐데가 말한 것, 전부요.
...내가 뭘 해야 용서해줄 거예요?
@LSW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작게 조소했다가, 손을 들어 마른 세수를 했다가, 그 손을 내린 채로 당신을 다시 빤히 바라본다.) ... 뭘 해야 용서해줄 거냐고? 그러면 얘기해 봐. 네가 사과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무엇을' 잘못한 건지. 사과한다는 건 뭔가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잖아. 어떤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한 건지,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얘기해보라는 뜻이야. (어쩐지 당신이 근래 들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는 하다만, ... 이유를 알 수는 없다.)
@2VERGREEN_ (무엇이 잘못인지는 알고 있다. 항상 알고는 있었다.) 당신 말대로, 당신이... 에스마일과 갈등하게 만들었죠. 친구 사이를 갈라놓는 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요, 알아요. 당신을 불편하게 할 말들도 여러 번 했고요. 바로 정리해야 하는 일들인데도 그대로 내버려뒀죠. 그게 제 잘못이에요. (그리고 이번에도 그는 '사과'하고 있는데도 그리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익숙한 기분이다. 옅은 짜증이 밀려왔다. 행세를 할 때면 늘 그랬다. 차라리 정말로 미안한 기분이라도 들 수 있었다면 편리할 텐데. 가슴께가 조이는 건 단순히 불편한 감정 때문일 테다. 레아는 양손을 모아 깍지 낀 채로, 내리깐 눈만 굴려 힐데가르트를 바라본다.)
@LSW (눈을 조금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아버린다.) ... 그래,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다는 건 믿어. 그런데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서 말이야. ... 왜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몰라? (자신이라고 이런 상황이 편한 것은 아니였다. 충돌은 싫다. 갈등도 싫고. 그렇기에 불편하다면 불편한 쪽에 가깝겠지. ... 하지만 궁금했다.) 그러니까, 설명하라면 차라리 설명할 수 있으면서 마음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구냔 말이야. 난 네가 그렇게 군 것에 화가 난 게 아니야. 오히려 짜증이 나고 답답한 거는, 지금 이런 식으로 구는 네 모습이야, 레아.
@2VERGREEN_ (정말 싫었다면 힐데가르트가 이대로 떠나버렸을 걸 안다. 불편감은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외면해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앎과 이해가 다르듯이 이해와 공감 또한 다르다. 그래서 힐데가르트의 말이 정확히 깊은 곳을 찔러들어왔다.) ...그러니까 힐데가르트의 말이 맞다고 했잖아요. 난 둥근 행세를 하는 날카로운 돌이라고. (반쯤은 자포자기한 투였다.) 전 부적합하다고요. 설명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저야말로 묻고 싶어요... 마음으로 아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LSW (그러나 힐데가르트는 한 인간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이 단순한 불편감보다 우선하는 류의 인간이었고, 기회가 찾아왔으니 귀찮게 굴어보기로 결심한 참이었다.) ... 부적합한 인간이라는 건 없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은. (공연히 삐져나온 제 머리를 괴롭히며 대답한다. 이게 정답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단 한 순간이라도 이해하지 말고 있어보라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이해가 안 되는 채로 놔두고, 파도가 오면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가끔은 좀 휩쓸려도 가 보라고. ... 할 수 없는 게 아니야. 넌 하지 않는 거지.
@2VERGREEN_ (레아는 무심코 그를 멍하니 본다. '부적합한 인간은 없다.') ...아니, 전 알아야 해요. -(할머니가, 어른들이, 다른 사람들이,)- 전 그런 걸 잘 모른다고 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요. 휩쓸려가면 나는 여기저기 떠밀려야 해요. 그런 건... (당황감 때문인지 말이 다소 두서없이 흘러나왔다. '왜?'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그런 건... (내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면 왜 이렇게 입을 떼기가 어려운 거지?)
@LSW ... 아니, 틀렸어. 어른들이 내린 판단에 그게 아니라고 부정하는 행동이 버릇 없어 보이고, 잘못된 거라는 건 알아. 하지만 레아, 우리보다 세상을 더 살아본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맞는 말을 하는 건 아니야...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당신 앞에 가 서서, 올곧게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두 눈을 마주한다.) 세상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어. 사고하고, 반추해 보더라도 알 수 없는 일들도 가끔 있다고. (손을 뻗어 당신의 귀옆머리를 넘겨준다. 당신이 으례 저와 대화할 때 습관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 차라리 떠밀리지 그랬어. 그러면 내가 잡아주었을 건데. 아니면, 적어도... 같이 떠내려가며 즐겁게 웃어주기라도 했을 텐데.
@2VERGREEN_ (힐데가르트가 머리칼을 넘겨주자 불에 데기라도 한 듯 결국 견디지 못하고 팔을 밀어냈는데, 그러고서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여전히 표정은 그대로지만 가까이서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눈은 어쩔 줄 모르고 겁에 질린 동물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다.)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내내 이렇게 살아왔다고요. 내가 틀린 게 아니에요... (두어 걸음 물러난다. 힐데가르트의 말은 이날 이때까지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었고, 그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다. 할 수 없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이, 더 이어지기 전에, 끊어낸다. 레아는 몸을 반쯤 튼다. 이곳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LSW (발을 채 옮기기도 전에 단단히 붙잡는다. 언젠가의 기억이다. 당신은 이리 말했었다. "선을 모르겠다면 아예 처음부터 파고들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모난 돌이 다른 돌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면 깎거나 깎일 일이 없으니까요." 이 말을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그것을 못내 오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망가지 마.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지? ... 어렵지 않아. 이런 순간에 피하지 마. 떠밀리라고. ― 다시 한 번 말할게. 넌 틀렸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숙명인 모난 돌이라면, 차라리 네 세계에 자그마한 균열을 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밀려나올, 결국은 장벽을 무너뜨릴 균열을. 겁먹은 두 눈을 바라본다. ... 당신이 지금껏 자신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눈을 하고 있다. 마주한 그것이 낯설기만 하고...)
... 대답해, 레아. 넌 뭐가 그렇게 두렵지? (... 또한 그것은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떠밀리라고.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 물에 휩쓸리라고.
힐데가르트는 잡아주겠다고 했다. 최소한, 함께, 떠내려가 줄 거라고 했다. 팔뚝을 붙든 힘이 느껴진다. 힐데가르트는 지금 배를 붙드는 홋줄처럼 레아를 단단히 붙들고 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정말?-정말로.
문득 떠오르는 건 마치 가족이 사는 포츠머스의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해변에 다녀간 기억이다. 그때 '우리'는, 힐데가르트와 마치는 함께였다. 우리는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었다. 그 해변에서 레아는 파도가 연신 밀려오는 것을 보았다. 파도는 언제나 해안가로 밀고 들어온다. 그 파도는 겉보기로는 맑지만 조금만 깊어져도 흐려진다. 물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날카로운 돌이 모래 속에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파도를 타고 온 사나운 상어가 달려들 수도 있다. 독을 가진 해파리나 누군가 버리고 간 칼날이나, 무엇이든 아무래도 좋다.)
@2VERGREEN_ (중요한 건 그 안에 자신을 위협할 무언가가 있고, 레아는 어떤 대처도 생각해낼 수 없다는 거다. 온몸으로 부딪쳐오는 이 모난 돌이 그런 것처럼. 그는 숨을 헐떡인다.)
그만해요. (그때 포츠머스 해안가의 얕지만 깊은 물을 보며 레아는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과 같이. 레아는 언젠가 힐데가르트가 이 손을 놓아버릴 것이란 불안감이 있다.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악의를 밟아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고, 쥐고 있던 호의가 떠나가는 것이 두렵다. 그러면 방법은 간단했다. 처음부터 그 바다를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니까.
결국에는 답을 생각해내고 만다.)
그만 하라고요...
(무엇이 두렵냐면,)
(그 전부가 그렇다고.)
(어디선가 아주 희미한 소리가 났다. 그 모난 돌은 결국 견고한 유리에 작은 흠을 내고 말았다. 레아는 힐데가르트를 뿌리친다.)
@LSW (뿌리쳐지더라도, 몇 번을 당신이 피한다고 해도 다시 붙잡는다. 아무 말을 하지 않을 거면서도, 그저 같은 눈으로 당신을 계속 바라보는 게 전부지만 놓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해도 꼴이 우스웠다. 이게 무슨 짓인지도 모르겠고,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동시에... 직감적으로 당신에게 더욱 매달린다. 놓쳐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 레아.
(파도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면 언제나 제게 익숙한 고향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함께 걷지 않았다. 발을 간질이는 포말에 휩쓸리며 깔깔 웃어대는 힐데가르트 마치와 달리 레아 윈필드는 무엇이 두려운 것처럼 조금 떨어져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햇볕에 달구어진 모래가 뜨거울 만도 한데, 어린아이라면 오가는 파도가 신기해 한번쯤은 다가와 볼 만도 한데. 그리고 나는 그것이 퍽 의문스러웠다.)
@LSW (당신의 생각이 옳다. 의도치 않게 남을 상처주기를 선택한 날카롭고 모난 돌이 도처에 깔려있고, 시대를 타고 우리를 덮쳐오는 벗어날 수 없는 포식자가 그렇다. 혹자는 다가오는 사람에게 맹독의 촉수처럼 표독스러운 말로 쏘아대기도 하고, 곳곳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악의가 도사린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좋아. 내가 아니어도 좋아. 하지만...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될 거야. 네가 틀렸다는 사실을. ... 그리고, 그 모든 게 괜찮다는 사실을.
(하지만,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여름볕에 달구어진 몸을 식혀주는 짠물의 감각을 알 수 없다. 일렁이는 물은 빛을 굴절시키기 마련이다. 그저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그 아래에서 살아가고,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을 직시할 수 없고, 그들의 손을 맞잡을 수도 없다.)
@LSW (당신이 유리로 만든 견고한 성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 밖으로 당신을 데려올 수 없다면... 무너뜨리고 싶었다. 힐데가르트는 레아의 손을 잡고 싶었다. 그 모든 일에 불구하고,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리라고 약속했으니까.)
@2VERGREEN_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힐데가르트를 노려본다. 한참을 노려보다 어느 순간,) 알겠으니까 이거 놔요. (다소 풀죽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체념한 양 그는 팔의 힘을 푼다.) 힐데, 전 당신이 왜 그렇게 괜찮을 거라 확신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미 상처투성이잖아요. (염치 없는 말이었으나 비단 레아가 힐데가르트에게 입힌 상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힐데가르트가 라이터로 불태워야 했던 어느 황색언론의 잡지, 마법으로 복구해냈다 해도 거리에 새겨질 수밖에 없던 상흔들, 수많은 부고와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살아갈 사람들... 이날 이때껏 살아오며 보았던 일들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힐데가르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시대다. 그런 것들을 마주하느니 돌아보지 않는 편이 낫다고 레아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VERGREEN_ 지치지도 않아요? 이러는 거. (레아는 자신을 붙든 힐데가르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조그만데 어디서 이런 끈질김이 나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전혀 알 수가 없어 속이 울렁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이마를 짚는다.)
@LSW ...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괜찮지 않을 거라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 (작고 느리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찬가지로 당신을 붙들고 있던 손의 힘을 푼다. 아직 붙잡고는 있지만. ... 우리는, 아직 살아있으매 모든 것을 목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며, 저주인 동시에 축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를 마주해야 한다. 이미 사라져버린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아직 살아있는 우리가 나아가기 위해.)
지쳐, 힘들고. 그냥 다 그만둬버리고 싶고. (입밖으로 내기는 처음인 진심이다. 각자의 싸움에 지친 사람들에다 대고 '나 또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으므로. 아직 덜 잃은 자신에게는 발언권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말하고 싶었다.)
@LSW (저 또한 휩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다만 그 모든 순간에 다시 일어나는 것뿐이라고,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도, 난 이렇게 굴지 않고는 살 수 없어. 안타까운 일이지. 곱게는 못 죽을 운명인 건지... ... (느릿하게 웃는다.)
@2VERGREEN_ (레아는 힐데가르트를 마주본다. 먼 곳의 바람에 실려 날아온 풀씨가 뿌리내린 흙에는 무엇이 있는가. 대지가 가물어 황량하다. 아주 약간의 마찰만으로도 쉽게 들불이 붙어 번지곤 한다. 남아있는 초목들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남은 뼈를 묻어 예우하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그건 저주도, 축복도, 어느 쪽도 되지 못한다고,
흙먼지와 마른 풀만 남은 땅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지? 시야 너머 저 먼 곳의 수원? 이쪽으로 찾아드는 먹구름?
아니, 그것은 아지랑이다. 무엇이 되었든 전부 더운 날의 열기와 아지랑이가 빚어낸 환상이다 이곳에 비가 내리는 일은 없을 테다 그런데 당신은...)
...그건 착각이에요. 그렇게 해야만 살아있을 수 있다고 믿는 거죠.
@LSW (힐데가르트는 레아를 마주본다. 시선과 시선이 맞닿는다. 머나먼 세계에서 날아와 자리잡은 씨앗은 오로지 그 순간을 투쟁한다. 그는 오래지 않아 찾아올 종말을 모른다. 아니, 알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하다: '그저 이 세상에 던져졌으니 생을 다해 돌아가는 날까지 최선을 다한다.' 머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죽어가는 초목의 뿌리를 붙든다. 시간 속에 사라져가는 육신을 날려보내며 바래지 않는 정신을 붙들고 눈물을 흘린다. 그 몇 방울의 물로 바람에 실려 날아온 풀꽃은 싹을 틔운다.
... 그렇다면 이것은 진정 아지랑이인가? 우리는, 이것을, 환상이라 단정지을 수 있는가?)
착각이라도 좋아. 네가 모든 것을 받아들였을 때 견딜 수 없을 것이라 착각하며 사는 것과 비슷하겠지. 우리는 모두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잖아. 다들 비슷한 거야... ...
@2VERGREEN_ (이 순간 초라하다 여긴 이 마른 땅의 작은 풀은 그 무엇보다 질기고 어느 때보다 거대하다. 작지만 커다란 그림자 앞에서 레아는 힐데가르트의 앞에서 자신이 그보다 조그만 꼬마가 된 기분이었다. 이래서는 그냥 투정부리는 꼬마나 다름없다. 나는 무서워서 할 수 없으니까 너도 그만둬, 하는.)
마음대로 생각해요. 고집스럽긴.
(보잘것없는 어린아이. 두려워하지 않는 그 단순함이 부럽다. 동풍에 나부껴 누워도 다시 일어나는 풀이 부럽고, 자신에게는 없는 그 질긴 생명에 샘이 났다... 힐데가르트 같은 사람들은 레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 가슴이 턱 막혔다. 그것을 새삼 깨달으며 레아는 힐데가르트에게서 떨어진다. 레아는 이제 이곳을 벗어나려는지 힐데가르트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LSW 너도 똑같이 마음대로 굴잖아. (그리고 힐데가르트에게 있어서, 레아와 같은 사람들은 '아주 어려운' 이들 중 하나였다.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당신을 멍하니 바라보며, 굳어버린 듯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을 붙잡지 않을 것이다.)
... 돌아가기 전에 하나만 이야기하자. 이 방은 네 필요에 따라 변해. 바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세 번 움직이면 열리고. ... 왠지, 네게도 이런 공간이 필요한 순간이 생길 것 같아서 이야기해주는 거야. 소중히 여겨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