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a_Reinecke 너의 친애하는 루드밀라에게 사과 편지라도 쓰나 봐?... 직접 가서 말하지 그래, 다시 친구 시켜달라고. (또 빈정대는 말투로 다가와놓고선, 뒤늦게 편지 내용을 살핀다.)
@Julia_Reinecke (재빠르게 읽어내리곤 줄리아를 흘끔 보았다.) 너의 'Vater'한테 이 일을 알리고 싶진 않은 모양이네. 왜? 그 사람은 머글이라서? (저리 가라는 말은 깔끔히 무시했다.)
@Julia_Reinecke 그냥, 뭐. (아무렇지 않게 옆자리에 앉는다. 심장은 긴장과 착잡함으로 두근거리고 있는데도 어쩐지 이렇게 하고 싶었다.) 나한테는 말하기 싫어? 내 ‘보답’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나 보네.
@Julia_Reinecke 독일인한테 전쟁 얘길 하면 안 된다? 그것 참 웃기네. 전쟁 얘길 들으면 엉엉 울기라도 하나 보지. (비꼬듯이 말해놓은 다음에야 줄리아의 보가트를 떠올렸다. … …) 야. 너희 아버지는 몇 년생이야? 어디서 태어났어?
@Julia_Reinecke (삼촌이 가져다 준 책에서 보았던 사진을 떠올린다. ‘해방’ 직후의 베를린. 붉은 깃발이 꽂힌 베를린 제국의회의사당과 불타고 무너져내리기 일쑤인 민간 건물들. 거리 한가운데 커다랗게 세워져 있었던 스탈린의 흉상 사진과, 그것을 망연자실 바라보던 베를린 시민들. 어린 루드비크는 생각했더랬다: ‘뭐야. 폭격이 이어지고 시가전도 일어났다더니, 폴란드의 도시들보단 훨씬 덜 무너졌잖아.’)
(루드비크는 지나치게 많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눈물을 보았다. 수백만 단위의 희생자들에 관해 다룬 책들을 동화책 읽듯 읽었다. 어느새 고통에 무뎌져버렸다. 애초에 민간인 구역에 폭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부터 곧장 떠올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줄리아의 말에서 누군가가 생각났기에.) 전쟁 끝났을 때 너네 아버진 스물두 살쯤이었겠네. 징집 연령이었으니 별 이상 없다면 총도 잡았을 거고, 십 대부터 쭉 전쟁 속에서 지냈을 테지.
@Julia_Reinecke … …우리 엄마는 30년생이야. 고향은 그단스크. 너희 아버지라면 단치히라고 부를 것 같지만, 아무튼.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로 전쟁 속에서 자랐어. 그래선지 예나 지금이나 Wojna의 W 자만 들어도 눈물부터 흘려. …영어로 전쟁 말이야. (우리가 듣고 보고 겪지 않을 수 없었던 그것.) 네가 날 뭐라고 생각하든, 똑바로 말해두자면.
사람의 고통은 우습지 않아. (‘우리 엄마는 우스운 사람이 아니다.’) 그냥 네 아버지가, 독일인 주제에 그런다는 게… 그리고 넌, 딱히 널 위하지도 않는 루드밀라도 네 아버지도 그렇게나 사랑하면서 나한텐 화만 내는 게… … 짜증 날 뿐이라고. … …
@Ludwik (오래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마 학교에서 2차 세계대전과 나치에 대해 배웠던 시기였으리라. "아빠도 군대에 갔었어?" 그 말의 무게를 어린 그는 알지 못했다. "아니." 라고 답한 말 뒤에 담긴 무게도. 그 때 그의 눈에 어린 괴로움의 크기도. 다만 그때 생각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더 이상 물으면 안 된다' 고.)
독일인이면, 그러면 안 돼? 독일인이면, 전쟁을 두려워하면 안 돼? (사실 그때는, 뭣도 몰랐을 때는, 아빠가 당연히 '연합군'에 속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그래서 그 '아니'라는 대답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 것은, 조금 더 큰 후의 일이었고.) 우리 아빠는 군대도 가지 않았어. 이유는 나도 몰라.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까.)
@Ludwik 우리 아빠는, 폴란드를 침략하지도 않았어. 아무 곳에도, 관계 없단 말이야. (그러나 나는 모른다. 그 시기, 아빠가 무엇을 했는지. 그렇다면 그 시기, 내 아빠는 어디에 있었는지.)
넌 항상 나를 '독일인'이라고만 부르지. 너한테는 그게 전부인 것처럼.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 아빠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늘 함부로 말해. (아빠가 싫다. 아빠가 밉다. 아빠가 좋다. 아빠가 걱정된다. 아빠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과 별개로,) 너한테만은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Julia_Reinecke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던 대로 자리를 피했어야 했는데, 줄리아가 뭘 하든 모르는 척했어야 했는데… 후회가 싹튼 자리에는 종내 분노만 남았다. ‘거봐. 내가 말해 봤자 아무것도 이해 못하잖아. 자기네들 고통이 더 중요하다는 거잖아!… 우리 엄마 얘기 따위 해 주는 게 아니었는데. 독일인 돼지들은 죄다 똑같아… 너도 마찬가지야… 파시스트들!’ 하지만 그때 안아 주었던 것은 누구였지?… 위로하기 위해 다가갔던 것은 누구였고?)
(울먹임에 가까운 고함이 터져나왔다.) 네 아버진 아무 잘못 없다 이거야? 시대에 휘말린 개인일 뿐이니까? 웃기지 마! 독일놈들은 자기네가 질 게 뻔해지니까 남자라면 열 살 어린애까지 징집해서 전선에 내보냈어! 그런데도 너희 아버지가 군대에 가지 않았다고? 거짓말!… 거짓말이겠지, 그러니까 너도 이유를 모르는 거겠지! (줄리아가 쓰고 있던 편지지를 거칠게 빼앗아 들더니 구겨 쥐었다.
@Julia_Reinecke 그걸 테이블에 마구 내리쳤다. 몇 번이고. 그런 식으로 폭력을 휘두를지언정 가슴 속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음에도.) 이딴 검열된 동화 같은 거 쓰지 말고 네 아버지한테 제대로 묻기나 해. 검은 군복을 입고 죄 없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죽이러 갔냐고! 만약 정말 가지 않았던 거라면 왜 안 갔냐고, 대답을 받아내란 말이야!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내려두었다. 이미 구겨진 종이.) 너는 왜… 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구는 건데? 왜 아무것도 알지 않으려고 하는 건데? 너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체 왜 네 아버지를 불쌍해하기만 하냐고. 그런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될 것 같아? 절대 아니야!… … 난 영원히, 앞으로도 영원히 너희 아버지와 너 같은 족속들을 용서 못해! 왜냐면… (‘네 이야길 제대로 해 주지 않으니까. 널 위해 준 내가 아니라 루드밀라 따위를 옹호하니까. 나랑 같은 편 안 해 주니까…’) … …
@Ludwik ...... (편지를 빼앗겼다. 열심히 쓴 편지였다. 미워하고, 분노하면서도 아직 사랑하고, 걱정하는, 나의 아빠. 그런 아빠에게 쓴 편지였다. 종이는 구겨졌다. 찢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그가 들인 모든 노력은, 당신의 폭력 속에서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알고 싶지 않아! (당신을 노려본다. 소리를 지른다. 마치 비명과도 같은.) 왜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냐고, 왜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냐고! 네가 그 눈빛을 본 적 있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람의 그 눈을 네가 알아? 너희 엄마는 그냥 우는 거잖아. 우리 아빠는 죽으려고 해. 말 그대로 약을 한움큼은 집어 삼킨다고! 네가 그걸 본 적 있어? 있냐고! (악을 쓴다. 어차피 보가트로 들통난 거. 어차피 이상하다는 놀림을 들었던 거. 이제 숨길 것도 없다.)
@Ludwik 그런 눈 앞에다 대고, 너라면 물을 수 있겠어? 어째서― (왜 더운 날에도 팔을 걷지 않아요? 왜 전쟁을 무서워해요? 아빠도 나치였어요? 아빠가 다른 나라를 침략했어요? 아빠는 왜 독일에서 나왔어요? 아빠는 왜 영국에 살아요? 아빠는 왜, 아빠는 어째서. 너무도 많은 질문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이를 한번 앙다물었다가.) ...... 용서하지 마. 네 용서 따위, 바란 적도 없어. 넌 어차피 날 싫어하잖아. 언제나 그랬잖아.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당신을 노려보는 시선에는 핏발이 선다.) 미워해. 나도 영원히 모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