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mond_M 나 궁금한 게 있다. (불쑥.)
@Finnghal
뭔데?
@Raymond_M 네가 예전에 말한 그 '박애주의'라는 거 말야. 그건 언제부터 있었던 생각이냐.
@Finnghal
적어도 18세기? 뭐야, 이런 게 궁금했어?(괜히 돌덩이 하나 더 집어다가 물에 던진다.)
@Raymond_M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옆에서 날아가는 돌멩이 빤히 본다.)
@Finnghal
질문이 바뀌어야겠네. 행동하느냐고 묻는거야, 믿느냐고 묻는거야, 말하느냐고 묻는거야, 그게 아니면... 적당히 걸치느냐고 묻는거야. 뒤로 갈수록 늘어나지만 넷 다 대답은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Raymond_M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냐.
@Finnghal
이용 당한 것들은 흩어지고, 언어는 외면 당하며, 믿음은 사람의 어깨에 달라붙지만, 행동은 삶의 근간이 되므로.
@Raymond_M 그래, 이용당하고 외면당하는 거냐. (가벼운 한숨.) 어렵네, 그건 꽤 좋은 생각인 것 같았는데. 다 같이 한꺼번에 할 때의 이야기지, 모두들 안 하고 있는데 혼자만 모두를 '사랑'씩이나 하겠다고 들면 그야 그럴 만도 하겠어.
@Finnghal
그래도 무의미한 생각은 아니지. 생각하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바꾼다면, 행동하는 개인은 세상을 바꾸니까. 멍청하다고 비웃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인류 역사의 200년짜리 스테디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Raymond_M 하지만 너는 아니라고 했지. (가만히 곁눈질한다)
@Finnghal
그래, 나는 개인을 사랑하느라 전체를 사랑하는데 실패했으니까. 박애주의의 이상인 용서에 실패했고 비폭력주의를 따르지 못했지. 나를 이루는 것은 사랑과 동행하는 불타는 적개심이거든.
@Raymond_M 하지만 그 이상에 대한 존중심은 가지고 있고 말이지? (찰박, 소리가 나게 호숫가의 돌들을 깔고 다리를 굽혀 앉는다.) '용서'라는 건 뭐냐. '자비'와는 다른 거지, 그거?
@Finnghal
알거든, 적어도 그 단어가 이 세상을 얼마나 낫게 만들었는지, 아주 조금정도는.(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번에는 어째 어린애를 보는 표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아주 많이 다르지. 용서는 상대가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지만, 자비는 상대가 실패했음을 인정하게 하는 거니까.
@Raymond_M (호수를 응시하느라 레이먼드의 표정을 알아채지 못한다. 알아챘다 한들, 지금은 개의치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지점들에서 그는 실제로 어린아이나 마찬가지고, 그것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으니...) 실수는 할 수 있지, 누구나. 하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안 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실패한 녀석을 위한답시고 같이 노력을 놓아버리는 데 무슨 유익이 있다는 거야. (그 질문에 묻어나오는 것은 반박이나 불평이 아니라, 순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의아함이다.)
@Finnghal
유익은 없지. 많은 경우 자비는 수치를 위한것이고, 받는자가 아닌 베푸는자를 위한 것이며,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도 보지 않는 것인데... 인간도 아닌 것의 노력을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겠어. 가소롭다? 어리석다? 멍청했다? 자비는 내려다보며 주는거니까. 유익은 중요하지 않아. 상대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는 순간에는.
@Raymond_M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군. (빤...) 자비에는 패배하더라도 절멸에 이르지 않게 함으로 인해 갈등이 과하게 치닫지 않도록 완충한다는 중대한 유익이 있다. 하지만 네가 말하는 '용서'에는 어떤 유익이 있는 거지. 잘못을 하지 않을 이유를 없애버리는 거 아닌가.
@Finnghal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다는 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참아내는 게 아니야. 그 모든 잘못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 또한 아니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다는 건, 그게 잘못된 일임을 기억하게 한다는 거야.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을 때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무엇보다 자비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거든. 그건 재앙을 사람이 되게 할 수도 있는 변화구지. 사람이 오직 애정으로 변화하듯이. 나는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는자를 용서하지 않아. 통감하지 않는 자를 애정하지 않지. 사람이 아닌 재앙을 무슨 수로 애정할 수 있지?
@Raymond_M 아하, 애정. 결국은 또 사랑이군. (다소 맥빠진 얼굴로 몸을 뒤로 젖힌다.) 하지만 메르체. 사랑은 인간의 가장 큰 취약점이야. 네가 말하는 용서라는 것은 그렇다면, 가장 악한 자에게 가장 약한 부분을 무방비하게 내어주는 격이 아닌가. 이미 한 번 규율을 무시하고 타인을 개의치 않음을 드러낸 자에게 무엇을 믿고 마음을 맡기지? 아니면 그것은 충분한 시련과 노고를 통해 속죄를 마친 자에게 주어지는 성원권 회복의 일부인가?
@Finnghal
어쩌면 그런 일이 될 수 있지. 부정하지 않아. 상처난 흉금을 상대가 찌르고 도망가는 기능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 성원권 회복으로서의 기능이라... 그렇게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틀린 말도 아니네. 그렇지만 핀갈, 나는 물렁이고 연약하고 고루한 표현을 더 애정해. 우리가 영원히 '용서' 하지 않는다면 상대는 영원히 검은 양으로 남아야 하나? 사회의 기능은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이지. 값 없이 용서하라는 게 아니야. 값은 사과가 될 수도 있고, 부역이 될 수도 있으며 감금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인간은 가장 나약하고 고루한 방법으로 자란다.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을 위해서는 결국 인간을 인간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야 해. 용서는 무한하지 않고 내 용서는 가능성에 대한 신뢰니... 용서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자는 결국 배제 당하겠지. 인간들의 품에서. 영원토록. 이거면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나?
@Raymond_M 궁극적으로는 추방이나 사형을 전제하는 건가? 그 전까지 몇 번은 더 기회를 준다는 의미라면야, ... (우리도,) 어느 사회든, 대개 모든 죄를 극형으로 다스리지는 않겠지. 하지만, 역시 모르겠군. 사실 애초에 그 '사랑'이라는 것부터가 알 듯 말 듯하지만... ... (점점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잠시 말이 없어진다.) ... 뭐, 적어도 그 녀석이 뭘 교환하고 싶어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네.
@Finnghal
그보다는 사회적 죽음을 전제한다고 해두자. 추방이나 사형... 뭐 비슷하겠지. 그리스 로마신화 좋아해? 난 꽤 좋아해. 한 청년이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고 적힌 사과를 받아들었을 때 이야기 말이야. 한 신은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모든 전쟁에서 너 패배하리라고 말했고, 또다른 신은 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모든 부귀와 권세가 너를 떠나리라고 말했지만 마지막 신은 자애롭게 속삭였다. 날 선택하지 않으면 그 누두도 너 사랑하지 않으리. 궁금하네. 핀갈, 너였다면 어느 신에게 사과를 봉헌하겠니?
@Raymond_M 그거 원래는 뇌물을 주고 심판을 매수하려고 애쓰는 이야기 아니었냐. 언제 협박으로 반전된 거야?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주는 것도 없이 뺏겠다는 사람만 셋이라니,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을 것 같은데.
@Finnghal
서실 똑같은 이야기 아닌가? 파리스는 아테나를 선택하지 않아 전쟁에서 패배했고, 헤라를 선택하지 않아 권세도 부귀도 잃어버렸으며, 오직 사랑만을 얻어 그게 그의 재앙이 됐으니까. 이런. 말하고 보니 사랑도 영 좋은 것 같지는 않네. 그가 살던 나라에 불을 질러역사에서 아주 지워버렸으니.(제 턱가를 문질거린다.)음, 이거 역시 잘못되긴 했네. 교훈은 '사랑은 가장 미온적인 온정임과 동시에 가장 거대한 벌의 빌미이다.' 였는데. 지금 우리 이야기에서는 '자기한테 뭘 뺏겠다고만 하는 어른이 있다면 저항하세요.'가 됐으니. 뭐... 어느쪽이건 인생의 소중한 교훈이니 할 말은 없나?(고개를 갸웃거린다.)
@Raymond_M 사랑받지 못한다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냐? (제 턱을 문지른다.) 나는 모르겠어. 살면서 딱히 그런 걸 갈망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가장 무서운 쪽을 고르라면, 나로서는 아테나 쪽인걸. 머지않아 아주 형편없이 비참한 꼴로 죽게 될 거라는 뜻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