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h (늦다면 늦은 시각이다. 칼리노프스키 부위원장은 뒤늦은 저녁식사를 위해 요깃거리를 사들고 때마침 인적 드문 골목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마법부에서 오래 근무했던 이디스라면 알겠지만, 야근하는 직원들이 곧잘 저러곤 했다… 그리고 루드비크는 이디스를 알아 본다.) 아, 이게 누굽니까… … (전혀 놀라지 않은 기색. 장난조로 덧붙인다.) 일이 바빠서 아쉽군요. 오랜만에 당신과 술 한 잔 기울일 좋은 기회인데…
@Ludwik (이디스 또한 루드비크를 알아본다. 그가 저녁식사를 사들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건 몇 년 전까지 이디스에게도 평범한 일과였다.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제가 아직도 면담 대상자 목록에 올라 있나 보죠?
@Edith 글쎄요. 어떨 것 같습니까?… (웃기만 한다.) 왜 돌아온 겁니까? 저와 술을 마시고 싶어서는 아닐 것 같고…
@Ludwik 술은 질렸어. (어깨 으쓱인다.) 그냥 지켜보고 싶어서. 이유는... ... 그냥 미련이라고 해두지.
@Edith 많이 변했군요, 라인하트 부인. 술이 질린다고 하다니, 거기에 미련이라… … (이디스와의 마지막 면담을 반추한다.) …미련이 남았다면야 오랜만에 마법부 건물로 가 보시겠습니까? 당신이 이십 년 넘게 일했던 곳인데.
@Ludwik (지금 제 발로 마법부에 걸어들어가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중간하게 거절해서야 더 수상해 보일 테니...) ...그러시죠. 심문실 117호는 건재합니까?
@Edith (대답하지 않고 이디스의 팔을 단단히 잡는다. ‘펑!’ 풍경은 금방 뒤바뀐다, 이디스가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심문실 117호 안이다. …그런데 아까 이디스가 헛구역질을 하던 건 순간이동 멀미 때문이었을까?) 앉으세요. 술이 질리시면 홍차라도 내어 드릴까요? 각설탕은 몇 개면 되고요?… 저는 허니컷 차관님과 달리 단맛의 홍차를 좋아해서, 각설탕도 두 개씩은 넣는답니다. (현 마법사 사회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대화다. 평화롭고 태평해 보였다.)
@Ludwik (또 헛구역질한다. 몸이 쏠리는 이 느낌에 다시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고개를 들자 한결같은 심문실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실웃음을 지었다.) 여전하네. (자리에 앉는다. ‘면담 대상자’로 방문했을 때와 같은 의자다.) 나는 하나만. (이디스는 단조로운 대답을 한다. 그래, 최근 그의 삶은 태평했다. 과거를 잊고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뻔뻔하고 헛된 꿈을 꾸곤 할 정도로.) 이런 상황에 차나 마시고 있는 걸 들키면 잔소리 좀 듣겠어. 거기다 상대가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한 전 위원이어서야...
@Edith (등을 툭툭 두드려 주곤 차와 다과를 준비한다. 일상적인 대화처럼, 일상적인 행동을 하며 대답했다.) 여전하죠. 달라질 이유가 없고 아름다우니까. 뭐, 대처가 집권하던 시기보다야 훨씬 아름답지 않습니까?… 하하… 당신 아버지라면 동의할 것 같은데. 지금 영국 총리는 노동당 소속이니 상관없다고 하시려나. (책상에 널린 서류와 폴란드어로 된 공산주의 프로파간다 팜플렛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 조심히 옆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각설탕이 담긴 상자를 둔다.) 아, 머레이 전 위원님께선 가족에게서 독립한 지 오래였죠. 사실상 절연에 가까웠으니 이런 말 하지 말까요? (그는 이디스가 머글 사회에서 누구와 지내는지 모른다.)
@Ludwik 더럼 주에 남은 탄광이 이제 한 곳 뿐인 것 알아? 조합은 진작 대처리즘에 굴복했고 광부들은 떠나고 있는데... 아버지는 여즉 거기 남으시겠다더군. (그는 당신의 말을 끝까지 듣고 평온한 어조로 대화를 이어갔다. 매우 일상적인 대화처럼.) 세상은 변했는데 말이야... 그 사람은 끝까지 제가 믿는 걸 지키겠다고, 망설임도 없이... 미련하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 질문은 순수한 경이에 가까웠다.) 어떻게 그 정도로 삶에 확신을 가질 수 있지... (각설탕 하나를 홍차에 녹였다. 파동이 퍼져나가는 찻잔 속에 비친 얼굴은 옛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지금이라면 어린 시절의 너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시절은 이제 이 심문실 안에만 있군. (사이.) 아니면 아직도 전장에서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드나?...
@Edith 당신 아버지의 삶을 당신은 영원히 이해 못할 겁니다. (그냥, 갑자기.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일상적인 대화인 척 이어 나갈 수도 있었는데 어쩐지 그러고 싶었다… “미련하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디스의 말은 정직했고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그것에 상처입는 자신이 싫다.) …당신은 이해 못해요. 절대로. 내가 죽고 싶어하는 이유도 당신에겐 불가해의 영역일 거고… (예전엔 그걸 이해받고 싶었는데. 그래서 정상성을 원했고 모두에게 소리를 질렀는데. 이젠 그냥…) 앞으로도… 똑같을 겁니다. 사실 아무 의미 없고요.
네, 아무 의미 없죠… (제 몫의 홍차에 각설탕 두 개를 넣었다. 일상적인 행동인 척하고 싶었다.) 인간의 삶은… 가끔 보면 정말 역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당신도 나도. 그리고 우리네 아버지들도… … 인간 대다수가 머글이잖아요, 그래서 난 머글이 싫어졌어요. …핵전쟁이 정말 일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Ludwik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를 원하는 눈치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던가. (“이해하겠어?” 그는 그렇게 묻던 소년을 떠올린다.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는 대답만으로도 울 것처럼 기뻐했던...) 그게 네가 모든 걸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명분인가?
그래, 너도 나도 부끄러운 삶을 살았지. 역겹기도 했고. 나에게 네 삶의 옳고 그름을 논할 자격은 없어. (건조한 진심이다. 그는 홍차를 홀짝였다. 당신의 모형정원을 둘러본다. 아버지의 텔레비전 옆에는 여전히 노동조합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그 텔레비전은 더 이상 흑백이 아니다.) 다만 이 세계에 들어맞는 사람이 된, ‘머글이 싫다’고 말하는 네가... ...이상하게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어 보이거든. 이 심문실과 함께.
@Edith … …그렇다고 칩시다. 명분이라고 치죠… 누군가는 이해받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이해받지 못한다는 게 전 싫거든요. 모두가 공평하게 불가해의 존재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어? 이거 반공주의자들이 하던 말인데… 모두가 공평하게 불행한 체제라서 평등 사회라던… 하-하-하… (웃지 못할 농담을 농담이랍시고 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흑백 텔레비전을 보고 흑백 필름을 사용하며 지금의 이디스에게서 호그와트 급행열차에 올라탔던 11살 이디스를 보고 있다. 탄광 노동자의 자식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파르티잔 사령관 역할을 주었던 그날과는 너무 달라져버렸는데도.)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는 이쯤 하지요. 일어나지 못한 핵전쟁에 대해서도 그만두겠습니다. 단지… (당신의 시선을 따라 여상히 방 안을 둘러본다. 노동조합에 남은 이디스의 아버지처럼 그는 이 모형정원에 남고 싶다. 하지만 결국 마법사 사회로 돌아온 이디스처럼 ‘끝’을 보고 싶기도 하다.)
@Edith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게 어떻게 될지나 이야기할까요─별로 재밌는 얘기는 아니죠?─. 이 심문실은 결국 철거될지, 부끄러운 생을 택한 당신과 나는 어디로 가게 될지… 저도 그걸 조금은 생각해두고 싶네요. 그래야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부끄러운 생을 스스로 끝내버리는 게 가장 나은 방향일 수도 있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세상엔 죽어 마땅한 존재란 것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어떤 존재로 평가받을까.)
@Ludwik (그러나 어떤 일의 끝이 진정한 마지막이 아니며 끝의 다음이 있다는 사실은 늘 인간을 괴롭힌다. 당신의 말대로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그가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외면하고 다음을 생각하는 그 또한 비겁자일지 모른다. 비겁자이기에 다른 이의 비겁함을 한심하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모형정원의 소년에게 화를 낸다. 어린애처럼. 토해내는 것은 차라리 울음 같다. 그러니까 결국,) 네가 죽고 싶어 하는 것 따위 내 알 바 아냐. 거기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마냥 굴지 마. 넌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뿐인 데다 그것조차도 못 하는 겁쟁이야. 부끄러운 삶을 스스로 끝내서 네 최후조차도 부끄럽게 만들 건가? 내가 네게 ‘그렇다‘고 답해주면 그때는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넌 못 해... ...
@Ludwik ... ...전쟁은 곧 끝날 거야. 이 심문실은 없어질 거고, 우리가 한 일들이 비로소 죄가 될 수 있겠지. 그 뒤로 아즈카반에서 몇 십 년을 썩을 수도 있고, 어처구니 없게 일찍 풀려날지도 몰라. 세상은 악역이 당연하게 퇴장하는 동화같지 않으니까. 그때가 되면 우리가 자주 가던 술집은 사라지고 흑백 TV 따위는 남아있지도 않겠지. 그래도 어디서든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술을 진탕 마시고, 다시 말해.
(당신이 살아서 함께 다음을 봤으면 좋겠다고.)
아, 정말 부끄러운 삶이었지,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