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VERGREEN_ (길을 가던 중 누군가 달려와 부딪히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얼떨결에 내려다본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 역시. 좁은 방에서 치료받던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면, 아이도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을 두어 번 깜빡인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
@jules_diluti (아이는 당신을 인지하자마자 금세 눈을 동그랗게 뜨며 굳어버린 듯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을 뿐이다. 이름도 모르는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어릴 적의 일이나 처음 제 눈으로 보았던 검은 표식이나, 힐데가르트가 그와 나누었던 대화의 조각 정도인 터라⋯.) "저⋯ 죄송해요. 저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어쩌면 본능적인 공포. 말은 아주 천천히, 더듬더듬 이어져 나온다.)
@2VERGREEN_ 어⋯ 아니, 저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잠시 당황하더니 무릎을 두 손으로 짚고 아이와 눈을 맞춘다.) 저는 그냥 길을 가던 중이었어요. 우리 친구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이름이라도 힐데에게 들어둘걸. 말해주지도 않았겠지만. 속으로 작게 탄식하며 어린애의 정수리를 가볍게 토닥인다.) 힐데가르트는 어디 두고 이렇게 다니는 거예요? (단순히 안부차... 혹은 아이를 보호자에게 인계하기 위한 질문이었으나, 죽음을 먹는 자의 입에서 나왔기에 다분히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이다...)
@jules_diluti "저도 모르겠어요. 정말이에요. 자고 일어나서 눈 떠보니까 갑자기 없어져 있었어요⋯." (도로록 구른 푸른 눈은 제 머리를 가볍게 토닥이는 당신의 손으로 향한다. 여전히 경계하는 기색이 강하나 일단은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한 모양.) "⋯ 근데 저희 이모랑은 원래 아는 사이에요? 친구? 아닌 것 같은데⋯." (당신의 얼굴을 위아래로 가볍게 한 번 훑고는 대뜸 그리 질문한다. 어린아이의 눈은 제법 정확한 터라⋯.)
@2VERGREEN_ ...아주 옛날엔 친구였어요. 지금도 친구로 지내고 싶긴 한데, 으음... (여전히 눈높이를 맞춘 채로 난처한 미소를 짓는다.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이다가.) 그걸 정할 수 있는 건 힐데가르트 쪽이어서요. 제가 멋대로 말할 수 있진 않아 보이네요. (한편으로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보아하니 힐데가르트는 조카에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얘기하지 않고 호그와트로 향한 모양이다. 자기가 멋대로 발설했다가 이 작은 녀석이 용감하게 쫓아가기라도 하는 날엔...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렇게 돌아다니다 '나보다 불친절한' 죽음을 먹는 자에게 걸리는 것도 곤란한 노릇이다. 결국 고민하다 입을 연다.) 이러지 말고 집으로 가는 건 어때요? 특별히 가야 할 곳이 없다면 사탕 가게까지 데려다 줄게요.
@jules_diluti "매번 생각하는 건데, 어른들은 너무 복잡한 것 같아요. 친구로 지내고 싶으면 친구 하면 안 되는 거예요? ⋯ 그리고 저희 이모는 착해서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해줄 걸요?" (당신의 예상대로다. 무모하게 쫓아오기라도 할까 봐 잠든 새에 런던의 언니 집까지 데려다두기는 했으나⋯ 이 녀석이 그곳에서 빠져나와 이리 마법 세계의 거리를 활개치고 다니다 당신까지 마주하는 건 정말로,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었다.) "그러면 가게에 데려다주세요. 저는 문 열 줄 모르거든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서는 총총 제멋대로 걸어가는 건⋯ 아주 똑같다.)
@2VERGREEN_ 내가 거기 들어가도 되는진 정말로 모르겠는데... (난처한 기색으로 말끝을 흐리지만, 결국 아이가 혼자 가는 모습은 도저히 못 보겠는지- 그야, 아이는 힐데가르트를 너무나도 닮았고, 힐데가르트가 모습을 드러낸 채 호그와트에서 싸우고 있는 지금 그것은 딱히 좋은 소식이 아니었으므로- 아이의 뒤를 쫓아간다. 분주한 인파를 지나칠 때면 혹여 잃어버릴 새라 당신의 손을 잡기까지 한다. 흉흉한 기세로 길거리를 순찰 중인 두어 명의 '머글 태생 등록 위원회' 직원들과 눈을 마주치긴 했으나 고갯짓 하나로 무사히 지나친다. 그리고 가게 앞에 당도한다. 가게의 상태는 어떨까?)
@jules_diluti (제 손을 잡아오는 손길이 느껴지면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지만 뿌리치지 않는다. 그 손은 으례 아이들의 것이 그렇듯 따뜻하다. 아이는 제 옷 안을 뒤져 뻔뻔하게 당신의 손에 열쇠를 쥐어준다. 문에는 어딘가에 부탁해 만들어두었을 법한 마법—방지 처리가 된 자물쇠가 걸려 있다.) "저 열쇠 구멍까지 손 안 닿아요. 대신 열어주세요." ('휴업' 팻말이 걸려있는 것을 제하고는 평소와 같다. 햇볕이 잘 드는 위치에 자리잡은 가게. 사람의 애정이 닿은 티가 나도록 잘 자란 화분들이 잔뜩 놓여있는 입구. 당신의 기억으로부터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2VERGREEN_ ...다른 모르는 어른들에겐 이렇게 열쇠 내어주면 안 돼요, 알았죠? 특히 머리 검고, 눈 파랗고... 존댓말 쓰는 어른이면 더더욱. 그런 사람을 보면 그냥 도망가세요. (괜히 걱정되는지 약간의 잔소리를 건넨 후 허리를 반듯이 한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끼우고 돌린다. 문이 열린다. 그는 허락받지 않은 손님처럼 조심스러운 태도로 안에 들어선다.)
(햇볕이 드는 바닥을 가로지르는 발소리. 아이 두 명의 키를 매겨둔 나무 벽면 위에 잠시 머무르는 손. 아이로부터 잠시 주의를 돌린 그는 때아닌 감상에 사로잡힌다. 퀴디치를 하는 트롤들의 모습이 담긴 태피스트리를 걷어내고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마치 그때의 기억을 재확인하려는 듯이. 다락방을 잠시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묘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1층으로 내려오고, 사람 없는 카운터로 걸음을 옮긴다.)
...우리 친구, 이름이... (어물거리다가 본론.) 혹시 남는 종이 있나요?
@jules_diluti (세월의 흐름이 더해진 것을 제하고는, 당신이 사흘 간 머물렀던 다락의 모습도 변함이 없다. 여전히 벽에 못박힌 선반에는 마법약들과 이름을 발음하기도 힘든 머글 세계의 의약품들이 정신없이 놓여있다. 채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것들이 군데군데 섞여있는 것을 보아하니, 얼마 전까지도 사용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곳은 여전히 언제든지 닥쳐 올 방문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운터에 얌전히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당신을 기다리던 아이는 그 말에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리고는, 당신의 앞에 낙서가 그려진 — 공교롭게도 하늘을 나는 족제비와 고래의 그림이다. — 종이 한 장과 깃펜 하나를 내밀었다.) "제 이름은 루스 하이파 아이젠슈타인이에요. 아저씨는요? 나중에 이모한테 아저씨가 도와줬다고 얘기해줄래요."
@2VERGREEN_ (하늘을 나는 족제비와 고래의 그림을 보자 미소짓던 얼굴의 맥이 풀린다. 그는 고개를 젖히고 잠깐 웃음을 터뜨렸다가... 아이의 존재를 기억해내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문득 핀갈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길 위에서 간직할 것들을 찾아냈다면, 최단 경로가 아니라고 해서 없었어야 할 것이 되지는 않아.' 아, 이게 내가 간직할 것이구나. 오래 전 당신과 나눈 형편없는 낙서 하나.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로 아이의 말을 되풀이한다.) 루스 하이파 아이젠슈타인. (그리고 두 번 더. 루스. 루스 아이젠슈타인. 기억에 새겨두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당신을 본다. 금색 눈 저변에서 희미한 빛이 살아난다.)
쥘. 쥘 딜루티 린드버그예요. 하지만 전해주지 않아도 돼요. 힐데라면 내가 누군지 알 테니까. (그리고 고개를 기울여 낙서 뒷면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내용은 길지 않다. 깃펜이 잠깐씩 멈칫거리는 것 외에는 금방 쓰여진다.)
@2VERGREEN_ (편지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는다. 거꾸로 덮은 상태라 고래와 족제비의 낙서가 천장을 마주보게 된다.)
힐데에게 연락할 방법은 있어요? 없으면 제가 할게요.
@jules_diluti "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아저씨가 대신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제가 조금 덜 혼날 것 같거든요." (당신의 이름을 들은 아이가 배시시 웃는다.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다. 가게 한 켠에 마련된 책꽂이에는 쥘 린드버그의 책이 꽂혀 있다. 거짓된 희망을 먹고도 아이들은 자랐다.)
(그러고 보면 우연이라는 건 참 잔인한 구석이 있는 무언가일 지도 모른다. 하필 이런 시대에, 이런 모양으로, 형편없는 낙서 하나가 당신 앞에 가닿는 사건에는 어떠한 핍진성도 개연성도 없었지만, 그러나 그렇기에 운명은 동시에 찬란한 것이 된다. 되돌아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 영원히 간직할 무언가가 되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사소하고도 끔찍이도 복잡한 우연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얽혀준다면, 바람이 제때 불어와준다면. 그 때는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편지는 반드시 전해질 것이다⋯.)
@2VERGREEN_ 그래요, 그럼. (그는 지팡이를 든다. 숨을 고른다. 오랜 추억을 길어올린다. 호그와트의 호수를 떠올린다. 연회장에서 웃고 떠들던 아이들과 식초투성이 음악과 연극제와... ... 사실 그렇게까지 과거로 갈 것도 없다. 스무 해 전, 이끼장미를 날리던 당신을 떠올린다. 땅과 하늘이 뒤집힌 밤인데도 계속 글을 쓰라고 부탁하던 목소리를 떠올리고 분명한 목소리로 발음한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튀어나오는 것은 이전과 같은 박쥐의 패트로누스가 아니다. 은색 족제비가 날랜 몸체로 가게 안을 뛰어다닌다. 그는 그 모습을 다소 놀란 눈으로 보다 웃는다. 그리고 몸을 굽혀 족제비를 향해 말한다.)
힐데, 쥘이에요. 어쩌다 보니 루스를 만나서 가게로 데려다줬어요. 아마 안전할 테니 그쪽 상황 정리되면 이쪽으로 와줘요.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안녕. (그리고 지팡이를 까딱여 패트로누스를 당신에게 보낸다. 이것으로 인사는 끝났고.)
루스, 여기 얌전히 있을 수 있죠?
@jules_diluti "문단속 잘 하고 있으면 돼요. 저도 내년이면 호그와트에 갈 나이인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가게 안을 유영하는 작은 털뭉치를 바라보던 아이는 당신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것으로 작별도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