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es_diluti (부스럭하고 나뭇가지 밟는 소리 이후에 나타난 건... 또다른 동료다. 레아가 양손을 들어보인다.) 미안해요. 이쪽에서 약간의 진전이 있었거든요. 홀링스워스가(*죽음을 먹는 자 모브) 보호 마법의 빈틈을 발견한 것 같다더군요. 신참이라 조금 못미더워서 도와줄 인력을 요청하러 왔어요.
@jules_diluti (빤히 보다 웃는다.) 당신, 다른 곳은 몰라도 그리핀도르만큼은 갈 수 없을 모양인가봐요... 마침 배정 모자도 있는 학교에 오랜만에 다시 왔는데, 아쉽게 됐어요. (함께 있던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이 이들을 힐끔 본다.)
@jules_diluti 태평한 소리를 하는군요, 쥘. 그러다가 쥐들에게 물어뜯기고 말 거예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잖아요. 당신이 다시 태어나도 길러줄 목장이 이젠 없으니까, 목을 잘 간수하는 게 좋을 거예요. (하며 뒷짐을 진다.)
@jules_diluti (이번에는 무표정으로 입만 벌려 무언가 무는 시늉을 한다.) 가지 않은 지 십 년이 넘기도 했고, 그 돈을 다른 데서 굴리면 훨씬 이득이겠거니 싶었거든요. 팔고서 남은 돈이 얼마 되지는 않았대도. 아쉬워요?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jules_diluti 요즈음 들어서는 재산 불리는 데 재미가 붙어서요. (거짓말이다.) 물론 베라에게 조금 쥐여줘서 대모 노릇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래서, 린드버그 2세는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제가 갈아타버린 거잖아요. (전쟁 한복판에서 다분히도 일상적인 대화가 오간다. 레아는 쥘의 얼굴을 살핀다.)
@jules_diluti 죽다 살아난 사람 앞에서 그런 소리나 하니까 제가 그러죠. (눈길이 쥘의 손끝에 머문다. 그 탑햇은 어느 날 보았던 마르쿠스 린드버그를 떠올리게 했다.) 그럼 린드버그 일가도 여기서 대가 끊기겠군요. 아쉽게 되었어요. 루이가 언젠가 결혼하고도 성을 내버려두지 않는 이상은.
@jules_diluti 제가 루이였어도 죽을 때까지 당신 얼굴 보지 않고 숨어다니겠어요. 그리도 무참한 짓을 저질렀으니... 마르쿠스와 메이블이 통탄할 거라고요. 귀여움받던 막내가, 참. 끔찍하기도 하지. (서슴없이 망인들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이제는 죽고 없는 사람들이래도 언젠가 한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으며 웃고 대화했던 만큼, 여전히 그들이 죽었다는 현실감이 잘 들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쥘 린드버그의 말에서 묻어나는 미묘한 감정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LSW ... (뜸.) 무참한 짓이요? (당신을 돌아보는 것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아니면 필사적으로 영문을 모르고자 하는 얼굴이거나. 눈을 두어 번 껌뻑이더니 손바닥으로 느릿하게 턱을 문지른다.) 아하, 메이블이 죽었다는 걸 들었구나. 하기사 당신 정보력이면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죠. 근데 저랑은 관련 없는 일이에요.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겠고... (거짓말. 혀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지는 기분이었다가, 다소 저릴 지경이 되어서야 풀린다. 진심이라곤 담겨있지 않은 미소를 짓는다.) ...꽤 된 이야기죠.
@jules_diluti 꽤 되었지만 아직도 생생해요. 저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쥘. 멀어서 잘 보진 못했지만 메이블이 쓰러지는 걸 봤어요. 당신이 쏜 주문에. (그러니까, 쥘이 메이블을 죽였을 거라고 단정짓는 투였다.) 하지만 제가 잘못 보았던 걸지도 모르니... "확인해 드릴까요?" 사양할 필요 없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히 해야죠. (마주 웃는다. 쥘의 눈을 바라보는 시선이 집요하다. 가족을 죽이고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태도를 견딜 수 없었다. 그건 적어도 당신의 죄다. 당신의 죄라고, 쥘 린드버그......)
@jules_diluti 제가 삼십년지기 친구에게 왜 그러겠어요. 농담 아니에요, 쥘. (앞을 가로막고 멈춰서더니 쥘의 양 어깨를 붙든다. 그의 양 눈을 들여다보려 한다. 실상 레질리먼시를 쓰면서 그런 행동까지 할 필요는 없기에 이건 "이해시키려는" 동작이다.) 이제까지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면서 누님 한 명을 죽이지 못할 이유가 있어요? 인정해요.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라고요.
@jules_diluti 그게 당신의 살의예요. 위글 딜루티는 손가락 끝으로 사람을 밀어 낭떠러지로 내몰고 쥘 린드버그는 눈엣가시인 것들을 치워버리고 싶어하죠. 내가... 화풀이 삼아 돌을 던진다면 당신은 앞길을 가로막는 작은 돌을 걷어차는 거죠. 그때는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진 돌이 메이블이었을 뿐이고요. 아마 비슷한 상황이 돌아온다면, 포스틴과 루이에게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 (금속판 위를 미끄러지듯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레아는 쥘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코가 겨우 닿지 않을 거리로 끌어당겨,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살인자의 눈을.
눈 속에서 모든 것들이 반복된다. 그 모든 순간의 목격자들 중에서도 가장 정확하며 진실에 가까운 자는 쥘 린드버그뿐이니까. 태엽을 되감아 다시 과거로.)
@jules_diluti (기억은 그때 그 순간 거친 날것의 폭력으로써 존재한다. 그건 쥘이 다루곤 하는, 잘 짜맞추어진 어휘들처럼 명징하지도 다정하지도 않다. 당신은 전쟁 한복판을 구르고 있다. 불과 먼지와 쓰러진 몸뚱이들과 주인 잃은 지팡이와 빗자루들이 사방이 가득하다. 저쪽에 메이블 린드버그의 유령이, 아니, 메이블 린드버그가 있다. 막 발을 뗀 채로 멈추어 있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LSW (벼랑 아래로 자그마한 돌 하나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
@jules_diluti (쥘의 품에 안긴 메이블은 꼭 깊은 잠에 든 어린 소녀 같다. 새삼스레 메이블 린드버그가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싸워 왔던 이유를 깨닫는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네 손으로 죽였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네가 죽였다고.' 이로서 당신은 영영 외로워지리라. 어렸던 시절 내가 당신에게 저주하듯 했던 말처럼. 그러니까 도망가지 마, 쥘. 모두 네가 벌인 일이야. 네가 죽인 누나라고.
레아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쥘을 내려다본다. 화염이 타오른다. 연기와 불길이 쉼 없이 타오르며 그들의 주위에서 죽은 메이블 린드버그를 삼킬 것처럼 일렁인다. 레아는 조심스레 메이블의 앞에 앉아 그의 눈을 감기고는 일어난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라고 해야 할 차례일까요. 아니면 꼬마 쥘이라고 불러주는 쪽이 좋을까요.
@LSW 아, 아니야⋯. 아니야, 난⋯. (바짝 마른 입을 달싹인다. 깜빡이지 않고 당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며, 실핏줄이 터진 눈이 서서히 충혈되기 시작한다. 타는 듯한 따가움. 차오른 눈물이 마침내 뺨 위로 쏟아질 때까지도 그의 표정은 돌이 되어 굳어진 듯이 그대로다. 불이 타오르고, 자갈이 떨어지고, 쥘 린드버그는 사람을 죽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위해 슬퍼하며 화내던 누이를.)
(메이블의 몸을 천천히 땅에 내려놓는다. 루이가 곧바로 시신을 가져갔기 때문에 자세히 살피지 못했던 작은누나는 어릴 적 그의 방에서 놀다 잠들었을 때와 꼭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아마도 영혼이— 찢겨져 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튕기듯 일어나 당신의 목을 움켜쥔다. 모든 게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숨통을 우그러뜨릴 기세로 두 손에 힘을 준다. 눈물은 흐르고, 목소리가 분노로 떨린다.)
왜?— 왜 제게 이런 걸 보여줬어요?
@jules_diluti (환상 속 레아 윈필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목은 사람의 체온을 띠나 인형처럼 기침하지도 않고 그저 시간이 지나자 목 위의 얼굴이 밀랍 색으로 창백해져 간다. 불길이 넘실거리며 메이블의 시신으로 혀를 날름거린다. 노란 빛이 그 인형의 얼굴 가장자리에 어룽진다. 타닥거리며 불똥이 튀는 소리는 자갈이 굴러떨어지는 소리를 닮았다. 그마저도 점차 희미해져 멀어진다. 죽임당하는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니, 그 대신 어떤 목소리가 쥘의 왼쪽 귓가에서 윙윙거린다.) 알아야 하니까요. 그 *사람 좋은* 쥘 린드버그가 메이블을 어떻게 죽였는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누군가 쥘의 오른쪽 귀에 손을 대고 아주 가까이서 속삭인다.) 저도 치워버려요. 메이블에게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요.
그게 얼마나 쉬운지 알고 있잖아요, 꼬마 쥘.
@LSW (숨이 점점 가빠온다. 두 손으로 조르는 것이 꼭 당신이 아닌 자신의 목인 것처럼. 어깨가 크게 들썩이지만, 벌겋게 충혈된 두 눈은 당신의 얼굴을 떠날 줄 모른다.) 모르고 살아도 됐잖아요. 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뒀어야지. 좋은 사람 행세나 하면서 살도록 뒀어야지. 내가 어떻게 잊었는데. 왜? 왜 이런 걸 보여줬냐고! (당신을 잡아 흔든다. 울부짖는 목소리는 처절하다.) 구제불능의 악인은 당신 하나로 충분하잖아! 친구라며! 나 하나 정도는, 그냥, 그냥 뻔뻔하게 행복해도 되는 거 아니야?!
(악마가 그의 귀에 손을 대고 소근거린다. '저도 치워버려요. 메이블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순간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오른쪽 손등의 근육이 경련한다. 그는 가파른 숨을 들이마시며 두 손을 당신의 목에서 떼어낸다.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온다.)
@jules_diluti (당신의 바로 코앞에 새파란 눈이 있다. 눈 안에는 탑햇을 쓰고 코트를 걸친 좋은 사람의 상이 비친다. 그는 그제야 고개를 뒤로 물리며 구겨진 쥘의 옷 어깨 부분을 털어준다. 피상적이지만 친절하다.)
아쉽군요. 진짜 죽이고 행복해지나 기대했는데. (하며 웃는다.) 가족도 죽였는데 친구까지 죽이지 못할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네?
@jules_diluti (그 호박색이 제법 금수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우리는 동등하다.) 뭘 그렇게 유난이에요, 절 진짜 죽이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당신이 레아의 목을 진짜 졸랐더라도 큰 저항은 없었을 거다.) 전 쥘과 잘 지내고 싶으니까, 우리 화해해요. 네? (이건 당신이 늘 하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손끝으로 밀어 돌을 굴러떨어지게 하고서, 그게 별 일 아니었던 양 구는 것 말이다.) 저는 그냥 당신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위해를 끼치지도 않았잖아요, 쥘에게. 끌어내린 게 아니라 당신이 원래부터 그랬던 거예요. 마주하라고요. 스스로를.
@LSW 당신 진짜...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잇새로 띄엄띄엄 흘러나오는 말.) ...당신은, 정말...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신이 늘상 해오던 것이다. 불현듯 헛구역질이 치민다. 오한이 내려앉으며 온 몸이 떨리고 살갗을 뒤덮은 식은땀을 의식하게 된다. 내가 정말 저런 식으로 굴었던가? 이를 악물지만, 말은 쉬이 나오지 않는다.) 약속했잖아요. 이제 나를 먹잇감으로 삼진 않을 거라고... 그런데 나는, 당신 때문에, 두 명이나 살인한 게 될 뻔했... (우욱. 말하다 말고 한 번 더 입을 틀어막더니, 애써 숨을 고른다.) ...내가 뭐라고 말하길 원해요? 결국 나나 당신이나 똑같이 끔찍한 인간이라고?
@jules_diluti 잘 아는군요. 이때까지 그런 끔찍한 인간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잖아요. 피부에 주름이라도 질세라 매번 품을 들이지, 처음 보는 도자기 주전자를 들여오지.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말이나 하면서... 혼자 번듯하고 말끔한 체 하는 꼴을 참아주는 것도 정도가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말이 맞았다. 이건 그저 저열한 악의에 불과하다. 세상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도 그 중 하나일 뿐인데 거기서 우월감을 느끼려 드는 것에 권태가 들어서다. 적어도 외롭고 싶진 않았다. 외롭고 싶지 않았고... 당신이 외로움을 깨닫길 바랐다.) 먹잇감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에게 내가 왜. 그래도 안심해요, 끔찍한 인간이 당신뿐인 건 아니잖아요. 여기도 하나 있으니까.
@LSW "여기도"? (당신의 말을 기가 차다는 듯이 반복한다.) 우린— 우린 같지 않아요, 레아. 인정하건대 내가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사람을... 누나를... 죽였고... (목소리가 재차 흔들렸다가.) ...하지만 난 죄책감을, 그래요, 죄책감을 느껴서 지금껏 그 기억을 외면해 왔던 거예요. 당신과는 달라요. 다르다고... 나에겐 최소한 끔찍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있는데. 자처해서 악으로 걸어들어가는 당신과 어떻게 같겠어요? (발악하는 목소리는 빠르고 위태하다. 하고 싶었던 말을 죄 게워내듯이. 이것은 최후 변론이다.) 이제 와서 말인데, 당신이 해치고 망가뜨린 사람들 중에선 제가 꽤나 친애하던 친구들이 많았어요. 당신 때문에 제 인생이 이렇게 못나졌다고요. 전부 당신 때문에... (그리고 눈을 문질러 닦는다.)
@jules_diluti 있잖아요, 쥘. (근처의 나무에 기대어 선다.) 우린 꽤 닮아 있어요.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의 탓을 한다는 점에서. 친구끼리 닮는다는 속설이 있던데 어쩌면 그게 정말 맞는 말인가보죠. 솔직히 말해 봐요. 제가 아니면 이런 쪽으로 이야기할 친구가 얼마나 된다고. 당신은 결국 절 막지 않았어요. 정말 아끼고 사랑했더라면 나서서 그러지 말라고 하던가, 그래,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조금 더 용기를 낸다면 절 막아섰겠고. 그러지도 못하고 저 때문이라고 하는 것부터가 얼토당토않다는 거예요. 꼬마 쥘... 나는 스스로 지옥으로 발을 내딛지만.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옥으로 가고 있군요. 외면하는 건 쉬워요.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인다. 이건 아주 오래된 미련이자 후회다.)
슬슬 한 번쯤 뒤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어요?
@LSW (긴 침묵 끝에 쉰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린다.)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던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친애를 줄 수가 있겠어요?... 레아, 들어보세요. 오르페우스는 뒤돌아본 대가로 아내를 잃고 7일간 식음을 전폐했어요. 이후 그는 영영 예전같은 사람이 될 순 없었죠. 다른 여인들을 위해 연주하길 거부하다 찢겨진 채 강물로 흘려보내진 그의 결말을 보세요. 타인을 위해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자들은요, 결코 뒤를 돌아봐선 안 돼요. 노래를 멈춰서도 안 돼요...
(잠시 뜸을 들인다. 짓궂은 복수심이 눈 안에 어른거린다.) ...하지만 당신은 돌아본 것 같군요. 어떻던가요? 당신의 눈에 들어온 뒤쪽의 풍경은.
@jules_diluti (눈을 몇 번 깜빡인다. 더는 친애할 수 없다고 하는 목소리는 어쩌면 언젠가는 듣게 될 말이기도 해서, 예상은 하고 있었다. 예상하는 것과 실제로 듣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래도.) 자기기만이에요. 당신은 그냥 두려운 거잖아요. 전부 마주하는 게 무서운 거잖아요. 이때까지 노래하고 써온 이야기가 사실은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기 무섭잖아요. 내가... (잠시 말이 멎는다. 대답하는 대신 배를 감싸안고 고개를 숙인다. 그래도 친구인데. 악우일지언정 친애를 줄 수 없다는 당신의 말이 날카롭게 파고든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 말이 맞았다. 자신이 휘두르는 칼은 그 무고하고 옳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쥘 린드버그마저 상처입힌다. 뒤를 돌아보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도 돌아봤고. 그건 영영 레아 윈필드를 예전 같은 냉담자로 내버려두기 어려울 테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예요?
@LSW (당신을 한참 바라본다. 자조적인 웃음기가 차차 가라앉는다. 마침내 입을 열자 그는 이전에 비해 꽤나 진정한 것처럼 보인다.) ...네, 두려워요. 두려워서 지금껏 메이블을 죽인 걸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게 사고였다고 믿으면, 최소한, 잠시 동안은... 어머니와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게 불가능하더라도, 나는... 희망 하나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잠시 손을 떤다. 주먹을 쥐었다 펴자 떨림은 금세 멎는다.) 그래서 절 속였어요. 그게 뭐 어때서요? 난 좋은 사람이고 싶었는데... 당신이 학창시절을 보냈듯이 평생을 보내면서.
그래서 궁금한 거예요. 당신은 항상 나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으니까. (잔인한 말로 상처를 주고 싶은가? 맞다. 원망하고 싶은가? 그것도 맞지. 하지만 이것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이것 하나가 진실로 궁금했다.)
많이 아픈가요? (내가 돌아보는 그 순간을 위해 예비된 미래가 과연 무엇인지.)
@jules_diluti (바로 대답하지 않고 숲 안쪽의 어둠을 응시한다. 곧 마왕의 군대가 학교로 진군한다. 그 때부터는 많은 것들이 변할 테다. 어떤 것들은 돌이킬 수 없어질 것이다. 태도가 누그러진다. 얼굴을 마른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내린 뒤 그런 이야기를 한다.) 사람을 심문해본 적 있어요? (라는 다소 뜬금없는 주제다.) 몇 마디 나누는 정도 말고 정말 죽기 전까지 몰아붙이는 일이요. 그때쯤 되면 제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빌기 시작해요. 그냥 죽여달라고. 그런 몸으로는 살아나간대도 몸과 마음에 영구한 상처가 남아요. 찢어진 영혼은 도로 붙일 수 없어요. 돌아본다는 건 그런 거예요, 쥘. 당신의 희망은 단순한 연명이에요. 진통제를 입에 들이붓고서는 아프지 않으니 상처도 괜찮다는 식으로 외면하는 거죠.
그나마 다행이군요. 좋은 사람인 체 하려는 그 마음이 당신을 지켜주고 있는 모양이라.
@LSW 없죠. 에스마일에게 했던 짓을 제외하면. 그건 '거래'와 집행이었으니, 심문과는 또 달라요. 어느 쪽이 윤리적으로 나은진 확답할 수 없겠다만... (이쪽의 태도 역시 차차 누그러진다. 어딘가 넋이 나가 보이기도 한다. 당신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숲 속의 어둠을 응시한다. 어둠이 그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난 비명소리와 피냄새를 싫어하거든요. 귀마개를 끼고 손수건으로 코를 막아요. (그러나 폭력의 현장을 막으려 들진 않는다.)
삶이란 만성적인 질환이에요. 연명하는 게 뭐가 나쁜지 모르겠어요. 세월이 자연히 숨을 거두어가는 그 순간까지 본인이 그저 연명하고 있단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그건 곧 치료가 아닌지... 궤변인가요? (당신을 돌아본다. 몽롱하던 목소리에 다시금 날이 선다.) 당신이 뭐라 하든, 당신이 내게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당신처럼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도 이만 포기하고 좀 편해지셨으면 좋겠네요. 좋은 사람이 되어 봐요. 네?
@jules_diluti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사람들은 소마Soma라는 약을 먹는다. 그 약은 환각성 식물인 소마초 즙에 물과 우유를 섞어 발효시킨 힌두교 문화권의 마약성 술에서 유래된다. 과거와 미래를 따져보았자 머리만 아프니 일 그램의 약으로 걱정을 없앤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안과 스트레스와 침울함을 포기한 대가로 일찍 죽고 만다. 가만 보면 쥘 린드버그는 그 사람들을 닮아 있었다.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에 취하여 현실을 잊어버린 인간이다. 당신은 어둠과 비명과 피비린내를 싫어하는 온순한 인물이다. 당신은 그 믿음에 취해 삶을 연명한다. 그러니까,) 전 그럴 수가 없나보죠. 노래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되지 못해도 그리운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어서요... ...
@jules_diluti (한 가지 더. 방bhang이라는 음료가 있다. 말린 대마잎을 우유, 설탕, 향료 그리고 견과류와 함께 갈아 만든다. 어디까지나 사소한 속설이겠으나 사람들은 그 음료를 마시면 죄에서 자유로워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반대로 적절한 의례를 치르고 마시지 않는 경우는 죄가 되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은 달콤한 술이다. 깨어나기 전까지는 당신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해줄 테다.)
@jules_diluti 당신이 예전에 책에서 인용했던 구절이 있었는데. 도저히 생각나질 않네요. 하하... ... 됐어요. (쥘의 어깨를 짚는다.) 난 이대로 살 테니까 당신도 그렇게 살아요. (두어 번 두드린 다음 옷 안쪽에서 작은 힙 플라스크를 꺼낸다. 안에 위스키가 한가득 담겨 있어 제법 출렁인다. 그걸 쥘에게 던져주고) 정 견디기 어려우면 마셔요. 당신은 술 같은 건 입에 잘 대지 않는다고 해도... 종전의 날엔 마셨으니까. (쥘을 지나쳐 낡은 성으로 향한다. 당신이 그걸 입에 댈 일이 없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