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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여름,
🌱 즐거운 곳에선 날 오라 하여도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학교는 재미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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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의 봄.
아직 돌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돌보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돌아서면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짬이 날 때마다 집안일과 내 할 일 — 이번에는 마감 기한을 이번 달 말로 잡은 게 패착이었다. — 을 하다 보면 하루는 정신 없이 지나가니까. 어느 순간 바뀌어버린 창문 밖의 풍경을 보면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벌써, 꽃이 피었다. 호그와트를 떠나 보내는 첫번째 봄이다.
"저기 봐, 에티. 창문 밖으로 꽃이 피었네? 빨리 커서 구경하러 가야지. 정말, 언제 클 거야?"
1980년의 여름.
🌲나는 믿나이다,
"… 저 기도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이렇게는 못 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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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요. 우리는 정말 어렵게 승리를 쟁취했소. 그래서 당신은 영웅적인 사례들을 써야만 하는 거요. 그리고 그런 예는 수백 가지도 넘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전쟁의 추악한 면만 보여주고 있소. 냄새나는 속옷만 보여줬단 말이오. 우리의 승리가 당신한테는 무섭고 끔찍한 것에 불과한 거요?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 진실들.
— 당신은 삶 속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거리에 있다고 말이오. 당신이 말하는 진실은 천박해요. 지나치게 세속적이오. 아니, 진실은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것이오. 우리가 되고자 하는 바로 그것!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정녕 당신도 진실 따위는 상관 없다는 나의 말에 동의한다면, 잠시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이 말은 곧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마흔 해의 시간 동안 쌓아올린 기억의 조각들을 당신에게 내밀고 싶다는 뜻이다⋯.
시작은 열여덟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비로소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세상에 대해 조금 깨달았으므로, 모순적으로 불사조 기사단이 궤멸되고 사라진 이후로 비로소 기사단원이 되었다. 어쩌다 이 길에 오르게 되었냐고 묻는 이들에게 나는 이리 답했다.
"⋯ 세상이 끝나지 않아서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1983년 2월의 일이었다. 이 이후로 이어지는 것이 온갖 전술과 작전과 투쟁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완벽한 오산이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결국 제 옆에 선 내 모습을 보며 에스마일 시프가 지었던 옅은 미소. 단원이 된 것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받았던 아들레이드 헤이즐턴의 경탄 어린 눈빛. 두번째 결혼식장에 섰던 임판데 쿠말로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온갖 약품들의 냄새 속에서도 힘껏 삶을 구가하는 아이작 나디르가 내밀었던 손의 온도나, 자신과 함께하기로 했다는 것을 듣고 기뻐하던 세실 브라이언트의 모습 같은 것들⋯.
장례식에 익숙해진 만큼, 나는 이제 왠만해서는 피와 상처 따위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가이 버트랜드처럼 도대체 무슨 주문으로 신체를 들쑤셔 놓았는지, 해독할 수 없는 상처를 달고 올 지라도, 쥘 린드버그처럼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헐떡이는 모습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다. 이제는 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나서서 그 상처를 싸매고 익숙한 주문을 외운다. ⋯ 그것은 좋은 일이다. 아니다, 그런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다. 나는, 난⋯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런 것에 익숙해졌다는 건, 곧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다치고 고통스러워했다는 반증이니까⋯.
⋯ 만약 당신이 여전히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 이제 최악의 기억을 꺼내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사람을 죽이고자 했다. 오로지 그는 여전히 운이 좋아 살아있는 것이니,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스무 해 전만 해도 자랑스럽게 친구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레아 윈필드였다. 나는 그를 세 번 죽이고자 했다. 세 번 부정하고자 했다. 그의 암살에 대한 논의가 나왔을 때마다 나는 자원해서 그것을 수행했다. 모르겠다⋯. 내가 왜 그토록 그를 죽이고 싶어하는 것인지. 난 떳떳하지 않다. 나의 죄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오로지 내가 바라는 것은⋯.
역사는 앞으로도 수백 년은 더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라며 고민하겠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디에서 왔을까? 상상을 한번 해봐. 임신한 여자가 지뢰를 안고 가는 장면을⋯⋯ 체르노바는 당연히 아이를 기다렸지⋯⋯ 삶을 사랑했고 또 살고 싶어했어. 당연히 두려워도 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길을 갔어⋯⋯ 스탈린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는 무릎을 꿇어가며 살아야 하는 삶은 거부했어. 적에게 굴종하는 삶 따위는⋯⋯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989년 6월의 일이다. 루스는 그때 겨우 뒤집기를 시작했었다. 나는 기사단원 몇 명이 순간이동이 불가능한 지역에 고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본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앞에 나서 아이의 품 안에 포트키를 비롯한 필요한 물자들을 안기고 띠를 사용해 내 품에 감싸안았다. 가장 먼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챈 것은 나의 직속 선임인 벤조였다. 그는 나를 말리고자 몇 시간이나 언성을 높였으나 결국 뜻을 굽히지 않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를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길을 가다⋯ 누군가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길게 늘어선 줄 앞에서 시간이 지체될 때마다 나는 힘껏 아이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러면 곧 내 품의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죄송하다고 되뇌이며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 아이의 다리에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손톱으로 뜯긴 듯한 흉이 남아있다. 그 날 나는 동료 다섯의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세 해 안에 죽거나 아즈카반에 갇히거나 실종당했다. ⋯ 묻고 싶다. 과연 내가 한 일이 옳은 일이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미쳐버렸기에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이런 일들을 행하고 나서도 이 자리에 서서 저항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지만, 긴 시간 동안 엉망이 되어버리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어버린 나지만, 그래도 오로지 내가 바라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