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es_diluti (바로 대답하는 대신 잠시 생각에 빠진다.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노란색과 검은색이 반복되는 패턴의 목도리를 두른 꼬마는 제법 포르르 날아오는 꿀벌 같은 면이 있었다. '싫어하긴 어렵지.' 싫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평이한 투로 말하며 자신이 앉아있는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앉으라는 뜻이다.)
이번 여름에는 밤꿀을 떴다고 하더라고요. 밤꿀은 쌉싸름한 맛이 있어요. 한 병 얻어서 보내줄까요?
@jules_diluti (눈썹을 올렸다 내린다.) 꿀을 즐겨먹는 사람이 한 명은 더 있잖아요, 여기. (쥘의 좋지 않았던 기억은 알지 못하나 레아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턱을 괴고서 쥘을 바라보다가 포크로 반으로 잘린 치폴라타 소시지를 찍는다.) -그새 입맛이 바뀌기라도 했어요?
@jules_diluti 꿀을 먹지 않는다고 사람이 조숙해지거나 갑자기 어른이 되지는 않을 텐데요... 그건 그냥 입맛이잖아요. (소시지 찍은 포크를 내려놓는다. 포크가 식기에 부딪치며 작은 쨍강 소리가 난다.)
@jules_diluti (입을 벌렸다가 다문다. 쥘이 그 화제를 꺼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싶어서다. 잠깐의 고민 끝에 선뜻 대답한다.) 올바른 사람이 되라고 했어요. 내 스스로 판단해서 옳은 선택을 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요.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고도 했어요. -그래, 장래가 고민이었나요? '꼬마 쥘.' (부러 부드럽게 부른다.)
@jules_diluti (눈썹을 올렸다 내린다.) 글쎄,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참 먼 미래의 일일 거예요. 쥘이 무얼 해야 할지도 미래의 일이고요. (슬슬 고민이 필요한 나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게 말한다. 레아 자신이 그를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누나들이 그를 꼬마 쥘이라 부르는 이유에 단편적으로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귀여운 고민을 하네요. (툭 솔직한 감상을 말한다. 어쩐지 너그러운 기분이 든다.)
@jules_diluti (그러고보니 루이를 보지 못한 지가 꽤 되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다가 흔들리는 숟가락에 시선이 쏠린다.) 뭐, 그러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황금별이 되는 샐러맨더보다는 사람 이야기가 좋아서. (궁금하기도 했다. 어쩌다 이 '꼬마 쥘'이 다르게 마음먹은 걸까?) 사람을 이해하려면 먼저 관찰을 해야 해요. 그 사람의 말투와 자세를 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어요. 옷차림과 매무새에서도 성격이 묻어나요. 사람들마다 자주 쓰는 어휘가 다르고요. (좀 더... 기계적인 방식의 '이해'를 말한다.)
@jules_diluti ('생각보다 관찰력이 좋네.' 낯선 깨달음이 든 것도 잠깐이다. 눈 깜빡임도 없이 쥘을 바라본다. 먼저 의도를 생각한다. 나에 대한 반감일까? 억하심정?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기에는 이 꼬마가 순진하다는 걸 안다.) - (입을 벌렸다 닫는다. 그건 분명한 망설임이다. 날카롭게 쏘아붙일까 하다가도 칼날을 삼킨다. 이윽고... 생각보다는 무르고 싱거운 답을 내놓고 만다. 참 싫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뱃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다.) 글쎄요. 꼬마 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스스로 답을 찾아야죠.
@jules_diluti (말할 건 많다. 세상의 악함이라고는 조금도 알지 못하고 자랐을 것이면서 기분나쁠 정도로 감이 좋다거나. 눈치도 없이 물어본다던가. 그렇게 좋아하던 꿀을 더 이상 먹지 않는. 그랬으면서 아직도 꼬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친구'를 불편해하면서 그 기분에 정확한 이름을 붙일 줄 모르는. -다만 그는 지금도 읽히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쥘은 순수해요. 다정하고. 이해심이 많죠. 글을 좋아하고. 부드러워서. 좋은 친구예요. (그러니까, 싫어하기 어려운 아이다. 그럼에도 레아는 쥘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번 의식적으로 되새긴다. 머리가 조금 아파서 그런지 입맛이 없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jules_diluti (쥘을 내려다본다. 내려다보는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 (꿀과 향신료와 온갖 근사한 것들로 만들어진 소년. 부드러운 솜으로만 속을 가득 채운 꼭두각시 인형. 연약하니까, 힘주어 누르면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흐른다. 조금 더 힘주어 누르면 눈물을 터뜨리듯이 실밥이 터져 솜이 비져나올 것이다. 거기서 더 힘을 주면 볼썽사납게 망가진다. 그러면 더는 이런 걸 보지 않아도 되고. 그는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른 주인처럼 가위로 인형의 배를 가르는 상상을 한다.)
@LSW ...레아도 좋은 친구예요.
@jules_diluti 약속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두 사람이 하는 거죠. 괜한 이야기를 하기는.
@jules_diluti (잠깐의 간극 이후 레아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마저 말해볼까요. 어떻게 해야 쥘이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요.
@LSW (이 이야기는 눈의 여왕 같은 동화가 아니다. 따라서 레아와 쥘은 카이와 겔다가 아니다. 하지만 쥘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어쩌면 처음부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따금 흔들리고 확신을 잃어 자신에게 되물었을지언정. 그래서 그는 생각한다: 내 눈에 거울 조각이 박혀도 나의 태도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 당신이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보더니 미소한다. 주머니에서 꺼낸 수첩을 몇 장 팔랑거리며 넘기다가 도로 덮고는.)
알려주신다면 저야 기쁘죠. 레아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jules_diluti (쥘의 수첩에 눈길을 잠시 주었다가, 자신의 양손을 모아 겹친다.) 그건 쥘이 '좋다'의 기준을 누구에게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예요. 글은 결국 읽히는 거거든요. "독자"가 필요해요.
가령 미스터 린드버그를 기준으로 둔다면, 아버지께서 보기 좋은 글을 쓰면 되겠죠. 그분의 성에 차도록... 그러니까 꾸준히 노력하고 나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던가, 이런 '힘든 시대'에서도 희망을 놓지 말고 싸우자는 메시지를 담아서요. 이건 머글 태생이나 혼혈 마법사들을 위한 글도 되겠군요.
순수혈통 마법사들을 위한 거라면 그들이 보기 좋은 글을 쓰는 거예요. 누구든, (잠시 말을 멈춘다.) 듣고 싶은 말과 진정 들어야 하는 말이 있는 법이니까.
동화는 아이들을 위해 쓰는 글이죠. 하지만 쥘은 이제 그걸 그만두겠다고 했고. (쥘을 바라본다.) 요약하자면, 먼저 목적을 잡아야 해요.
누구를 위한 글을 쓸 거예요?
@LSW "독자"를 상정한 글이라. (중얼거린다. 무언가 골몰하는 모양새.) 네, 확실히 그게 맞겠어요. 제가 강렬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저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즐거우니까. 글로 사람을,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때... 그럴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러니 이 글은 저를 위한 것인 동시에 독자를 위한 것이 되어야겠네요. (당신을 똑바로 바라본다. 깨달음은 여명의 첫 햇살처럼 타오르기 시작하고, 그의 눈 안에선 무수한 별들이 빛을 얻는다.) ...그래요, 레아. 저는 희망에 관해서 써야겠어요. 어두운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내일로 보낼 수 있는 희망의 글을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순간, 그는 당신으로 인해 진실로 기뻐하고 있고, 그 사실을 인형의 얼굴 뒤에 감추지 않는다.)
...고마워요, 레아. 정말이에요! 당신은 어때요. 혹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jules_diluti (턱을 괴고 쥘을 바라본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건 나쁘지 않다. 더구나 이렇게 눈을 빛내는 것은 처음이라 다소 기분이 묘하다. 살아숨쉬기 시작하는 피노키오를 보는 기분이다.) 글쎄요, 당장은 생각나지 않아요.
그보다... 듣고 싶어하는 말로 채워진 희망의 글이라면 어떤 거예요? 희망은 주고 싶다고 주어지고 받고 싶다고 받아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구나 별은 어두운 밤에나 환하게 빛나죠. 낮에는 눈에 띄지 않아요.
@LSW 맞아요. 세상이 어두울 때 희망은 비로소 모두가 갈망하는 가치가 되죠.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같은 세상이 아니라면 언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흥분한 탓에 말은 평소보다 빠르다. 목각 인형보단 사람에 가까운 태도로 고개를 비스듬히 젖힌다. 시선은 연회장의 천장에 고정되어 있고.) 하지만 마냥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해준다면 믿지 못하는 게 사람 본성이니까. 주인공에겐 좌절과 시련이 필요해요. 사람들이 이입할 수 있는 상실도요. 그런 다음 극적인 해피 엔딩으로 이끈다면, 그야말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되겠죠. 공감할 수 있는 괴로움과...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약속.
@jules_diluti (여전히... 미묘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쥘이 이렇게나 신나서 말하는 건 거의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레아의 감정은 약간의 낯설음과도 닮아 있다.) 약속과 공감의 가치... 이해했어요. 그게 돋보이려면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런데, 쥘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팔고 싶은 거예요? 그게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맞아요?
@jules_diluti 주목받는 멋진 작가가 되어서 영광을 누리는 거군요. ...알겠어요. 명예가 목표인 사람도 있죠. 별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며 자신의 귀옆머리를 넘긴다.) 그냥 당신이 그런 목표를 설정한 것일 뿐이니까. ...그래도... 전 사람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옛날의 그 동화가 조금 그립긴 하네요.
@jules_diluti (아쉬움이냐면 잘 모르겠다. 레아는 애초에 동화 같은 것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동화를 쓴 사람의 마음가짐이 흥미로웠고 글에서 묻어나오는 생각이 신기했다. 그래서 그리움이냐 묻는다면, 차라리 이쪽일지도 몰랐다. 평화로웠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쥘을 마냥 해맑은 아이로만 생각하고 미워할 수 있었던 시절 말이다.) -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어른이 된다. 어떤 것들은 붙잡을 수 없다. 손에 쥐어도 모래처럼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아세요, 쥘?
저는 뒤돌아보는 사람에 대한 동화를 듣고 싶어요. 그러니까 기억해주세요.
@LSW (신기하지, 산다는 건 결국 애정을 주고받기 위한 것일텐데. 타인을 미워하는 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는 게. 하지만 위대한 문명이 폐허가 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동안에도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당신이 가엾고 껄끄럽다고 여길지언정 미워한 적은 없었고, 양떼 중에서 가장 겉도는 검은 양을 살피는 마음일 때가 더 많았다.)
알죠. 오르페우스는 아름다운 선율로 지하의 왕을 감동시켜 아내를 구할 뻔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아내를 잃었다... (책을 암송하듯 말하곤 짧게 의문한다.) 믿음이 부족했던 걸까, 애정이 과했던 걸까... 어쨌든 기억해 둘게요. 하지만 당신이 오르페우스가 되어야 한다면 뒤돌아보지 않길 바라요.